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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민 Oct 20. 2023

잘 나가는 작품들의 공통점

나도 욕을 먹어봤으면

웹소설 아카데미의 과제로 순위권에 있는 작품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인풋(다른 작품을 읽는 행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천재라서 인풋 없이 내 스스로 기발한 걸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은 똥 같은 것뿐이었다. 문득 겸손해졌다. 나 혼자 기발하다고 생각한 것이 독자들에겐 기이한 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풋을 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클리셰는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했다.


웹소설 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나가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공통점을 하나 깨달았다. 캐릭터가 좋다든가, 문체가 개성 있다든가 그런 것 말고. 당연히 순위권의 작품들은 캐릭터, 문체, 세계관, 구조 등이 모두 평균 이상이었다. 내가 발견한 건 결과론적인 공통점이었다. 그것은 인기작들의 댓글에 있었다. 그렇다, 악플. 분명 나는 재밌게 소설을 읽었는데 스크롤을 쭉 내려 댓글을 보면 이상하리만큼 그것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이 작가가 이완용인 것마냥 화가 나 있었다. 무서운 사람들.


잘 나가는 작품들에는 이상하리만치 악플이 많았다.


내가 말하는 악플은 근거를 동반한 '지적'이 아니다. 그저 악의적인 '비방'을 말하는 것이다. 유독 인기리의 작품들 중에선 악의적인 댓글이 많이 보였다. 취향에 안 맞으면 조용히 뒤로 가면 될 것인데, 굳이 작가를 공격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차합니다 작가님도 상하차나 하세요


이런 류의 악담에서 끝나지 않았다. 위와 같은 댓글은 이제 밈처럼 굳어진 귀여움에 속하는 댓글이었고, 실제로는 '작가가 멍청하고 무식하다', '소설 때려치고 다른 직업 찾아라' 등의 1차원적인 원색적 비난이었다. 나는 읽는 입장이었지만 저런 댓글을 읽은 작가는 꽤나 신경이 거슬렸을 것 같다(아니면 매일 5,000자 쓰느라 바쁘거나, 혹은 통장에 들어온 돈 세느라 바쁘거나).


나는 차라리 '유료 욕 댓글'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싶었다. 기왕 욕먹을 거, 돈을 내고 악플을 달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악플러가 한 글자당 10원의 돈을 낸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아닌가. 악플러는 한 글자 한 글자 신중하게 욕을 입력할 것이고,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의미가 매우 함축된 시 같은 악플을 달지도 모른다. 신춘문예처럼 또 하나의 욕 장르가 탄생하는 것이다. 또, 욕을 먹는 작가 또한 악플 내용에 기분은 나쁘지만 돈을 벌게 되니까 속으론 악플을 더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일부러 악플을 유도해 버릴지도.


아무튼, 다른 작품에 달린 악플들을 읽으며 나는 내심 부러웠다. 잘 나가는 작품에만 나타나는 일종의 징표랄까, 인증마크를 받은 셈이었으니까. 나는 웹소설을 올려도 항상 댓글이 없었다. 소위 말하는 무플. 그때 나는 진심으로 '악플이라도 달렸으면', '나도 욕을 먹어봤으면' 생각했다. 새까만 관심마저 고파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웬일로 댓글이 달린 적이 있었다. 엔돌핀이 돌면서 후다닥 댓글창을 열어봤더니 내 작품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다. 나는 그 댓글을 캡처해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는데 '그거 나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졌던 적이 있다. 산타할아버지의 정체가 사실은 아빠였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같았다. 나를 위한 마음이었겠지만 차라리 진실을 몰랐어야만 했다.


언젠간 내 작품에도 악플이 달렸으면 좋겠다. 나는 문득, 원색적인 비난들이 가득한 먼 미래의 순위권인 내 작품을 상상한다. 형형색색 아름답고 다양한 욕들이 달려 있겠지. 너무 심한 욕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선을 넘으면 고소할 거니까. 적당히 귀여운 욕들만 배불리 먹었음 좋겠다. 


생각해 보면 결국 악플이란 관심이 질투에 의해 왜곡된 현상 같다. 잘 나가는 작품에 악플이 많은 것 또한 이 이유 아닐까. 부러운 마음에 욕을 다는 것이다. 잘 나가는 작품에 질투를 표시하는 것, 그것이 악플인 것 같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외모를 판단하는 실험]

-외모가 잘난 사람 : 친구들한테 "나 못생겼지?" 라고 말하면 친구들이 욕을 한다.
-외모가 못난 사람 : 친구들한테 "나 못생겼지?" 라고 말하면 친구들이 위로 한다.


그렇다.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욕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그러니 악플이 달리면 자아도취 하도록 하자. '나는 잘난 사람'이라고. '나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라고.


방금 나도 친구한테  '못생겼지?'라며 위 실험을 써먹어 봤다. 그러자 '힘내 ㅠㅠ'라는 답이 돌아왔다.


...

나도 언젠간 욕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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