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우리 집 TV의 평균 방영시간은 2시간을 넘지 않았다. 핸드폰과 태블릿 PC가 유튜브라는 더 많은 채널을 열어주면서 그 2시간마저도 사라졌다. 더욱이 글을 쓰는 삶을 시작하면서는 그 좋아하는 드라마도 잘 보지 않게 되었다. 가끔 남편이 침대에서 보는 넷플릭스 화면을 슬쩍슬쩍 곁눈질로 보는 게 전부가 되어 버렸다.
그날도 글을 쓰려고 앉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누가 했던가? 세줄 정도 써 내려갔을 때 즈음, 이내 숨이 막혔다. 다음 문장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닫기를 눌렀다. 그리곤 거실 소파로 나와 앉았다. 평소 같았으면 핸드폰으로 자료를 찾거나, 책을 뒤졌을 테다. 하지만 그날은 옆에 있는 리모컨에 손이 자석처럼 착 들러붙는 듯했다. 20분 후면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나는, 남은 20분은 그냥 멍하니 쉬고 싶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비워내고 싶었다.
까맣고 커다란, 네모난 창에 알록달록한 색깔이 화려하게 어우러졌다. 일단 시선은 빼앗겼다.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도 뺏길 만한 프로그램이 어디 없을까? 기웃거리던 찰나, 비긴 어게인 프로그램에 바삐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췄다.
‘비긴 어게인 새로운 시즌 또 하나 보네.’(나중에 찾아보니, 이 또한 2020년 재방송 분이었던 것;;;) 재미있게 보았던 시즌1을 떠올리며 멤버들을 살펴보았다. 예전과 다르게 남녀노소 다양한 가수들이 섞여 있어 더욱 구미가 당겼다. 본격적으로 티브이 멍을 잡기 시작했다.
그때, 비긴 어게인 팀이 불러준 노래가 지오디의 <<길>>이었다.
중학생 시절, 한창 젝스키스에 빠져있을 때, 잡지 속 우리 오빠들의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지오디 팬들과 물물교환을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라이벌 HOT 보다는 더욱 가깝게 지내며 서로서로 응원했기에 반갑고 정겨운 곡이었다. 나의 추억 속 노래를 불러준다니. 기대의 눈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첫 소절을 부르던 헨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한국에 와서 연습생 시절 힘들 때 위안받던 곡으로 이 곡을 선택했는데, 감정이 울컥했나 보다. 그 모습을 보고 하림도 마음이 일어, 하지 않던 실수를 했다. 그렇게 올라오는 감정들에 기대어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곡이 끝났다.
그런데, 크러쉬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자신의 파트를 놓쳐버린 것이었다. 결국 무대가 끝나고 나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퇴장까지 했다. 크러쉬의 눈물에 소향도 함께 울고,,, 함께 있던 관객들도 울고,,, 그리고 나도 펑펑 울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가사처럼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에 대한 질문을 처음 해봤어요.”
크러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길의 가사를 곱씹어 보았다.
그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자욱한 망망대해 속에서, 작은 지도를 향한 나의 선택을 믿고 하염없이 노를 저어야 하는 것임을. 요즘 시련 아닌 시련을 겪고 있는 나에게도 가슴 한구석을 깊게 파고들어 콕콕 박히는 가사였다. 그저 앞만 보고 걸어왔다는 크러쉬, 그리고 지금 있는 이 길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
나도 문득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걸까? 그냥 그렇게 걸어가면 되는 걸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그리고 궁금해졌다. 내가 엄마가 되고, 일을 그만두고, 새로이 시작하는 이 모든 일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에 큰 지장은 없다. 남편의 월급으로 쪼개어 아껴 쓰면 입에 풀칠하지 않고는 살 수는 있는데 왜 구태여 도전하고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지,,,, 명예를 원했던 걸까? ‘엄마’라는 자리만으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히 생산적인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더 목말랐던 걸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에 질문을 던졌다. 잠깐이었지만 그렇게 펑펑 눈물로 쏟아내고 나니 기분은 조금 후련했다.
그림책 『알바트로스의 꿈』은 한 번도 날지 못한 알바트로스가 등장한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날지 못하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걸음으로 길을 걷는다. 뚜벅뚜벅 걸어 산을 오르다 보면 날아다니는 새가 부럽기도 하고, 빛이 없는 캄캄한 어둠 속을 지나다 보면 무섭고 외롭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알바트로스는 걷고 또 걷고, 다시 날개를 펼친다.
무엇이 정답인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더 매력적인 것이 인생이지 않은가.
옳은 길이 어디인지,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이 길의 끝이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한 채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냥 알바트로스처럼 꾸준히 걸어가 보려 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나 혼자만 걸어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다른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때로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 빠르게 달려 나간다. 혼자 뒤처지는 느낌에 문득 외롭고 무서워질 때가 있지만, 나도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 보려 한다. 조금 좁고, 울퉁불퉁한 길이라도 걸어 나가다 보면 훨훨 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아니, 설령 날지 못한다고 해도, 걸어서라도 나만의 몽유도원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복숭아나무 그늘 아래 앉아 나에게 기쁨을 주는 무언가와 함께 바람을 즐기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