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동물이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외롭지도 않기를-『강이』
소개팅 프로그램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바꾼 한마디가 있었다.
"제가 반려견이 있거든요. 혹시 강아지 좋아하세요?"
남자는 얼굴에 반가운 웃음을 띄며 이렇게 물었다.
"정말요? 저도 반려견 키우고 있어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OO 씨를 처음 뵈었지만 반려견을 키우고 계시다니 어떤 분인지 알 것 같군요.”
남자의 호감 있는 말에 여자는 얼굴을 붉혔다.
순간 나는 슬쩍 빈정이 상하고 말았다. 꼭 강아지를 키워야만 동물을 사랑하는 건가?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모두 나쁘다는 말인가? 괜한 자존심에 기분이 뒤틀려 채널을 돌렸다.
사실 나는 알레르기 성 비염을 가지고 있다. 털에 아주 취약한 질병이다. 중학교 시절, 내 책상 위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항상 있었고, 하루 한 통을 다 쓸 만큼 증상이 심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꽃가루가 날리는 봄에는 연거푸 재채기를 해대느라 빠르게 걷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런 나에게 반려동물은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도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보면 쓰다듬고 싶고, 새근새근 잠든 고양이를 보면 사진을 찍고 싶다.
비록 진짜 곁을 내어줄 순 없지만, 나의 마음속에도 나만의 반려동물이 있다. 바로 그림책 속 동물들. 그 많은 동물들 중에서도 이수지 작가의 『강이』라는 작품 속 강이가 참 좋다.
허기를 느끼며 케이지 속에 갇혀 있던 검은 개는 아랫집 언니 덕분에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미 여러 마리를 키우고 있던 탓에 새 주인은 검은 개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다.
“집에 마당이 있다는 사람들이 왔어요. 떠나고 싶지 않아요.”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안전한 곳을 찾자마자 또 다시 어딘가로 보내진다는 두려움이 느껴져서였다. 겨우 나에게 진심을 내어 주는 사람을 만났는데, 다시 또 목마르고 배고파지지 않을까 불안에 떠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마당이 있는 집의 순수한 두 친구가 검은 개를 맞아준다. 두 아이의 이름은 산이고 바다다. 그래서 검은 개는 '강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는다. 산과 바다는 검은 개를, 강이를 살뜰히 보살펴준다. 밥을 먹는 것을 지켜봐주고, 따뜻한 물로 몸을 적셔주고, 심심하지 않게 늘 곁에서 함께 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산과 바다는 잠시 떠나게 된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말했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한 마음을 강이의 눈망울이 말해준다. 촉촉한 눈가, 축 쳐진 귀, 힘 없이 털썩 주저앉은 다리가 슬픔을 말한다. 강이는 더 이상 배고프거나 목마르지는 않지만, 아프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덩달아 아파온다. 그런 아픈 몸으로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칠 때쯤, 산과 바다가 돌아온다. 셋은 같이 뒹굴고, 함께 순간을 즐긴다. 힘없던 강이의 꼬리도 봄바람에 신나게 흔들리는 것만 같다.
기다림 끝에 만난 산과 바다에게 꼬리를 마구 흔드는 듯한 장면은 내 마음을 울렸다. 물론 동물을 기르지 않아 그들에 관해 잘 모를 수도, 사랑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에 대한 내 마음은 늘 진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부탁하고 싶다. 나를 기다려주고, 바라봐주고,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주는 반려동물들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면 좋겠다. 그들을 위한다며 옆에 데려다 놓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지 않으면 좋겠다. 늙고 병들었다고 해서 함께 한 세월마저 낡아 시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면 좋겠다. 반려동물들이 '기다림', '외로움', '버려짐'이란 단어를 절대 아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강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나보다 약하다고 해서, 말을 못 하는 존재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다. 또 그림책 속 강이와 산과 바다처럼, 마음을 나눈 존재에게 약속을 지키며 진심으로 대해주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1978년 10월 15일, 세계 동물 권리 선언의 제1조다. 인구 4명 중 1명이 반려견을 키울 만큼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 흔해진 요즘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기회가 늘어난 만큼, 버려지는 일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비록 반려동물과 함께 하지는 못하는 나지만, 동물을 사랑하고 존중하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싶다. 또 나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단 1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동물들이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외롭지도 않기를,
사람과 함께 따뜻하게 이어져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