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맛있게 부치는 적당한 레시피

한 발 물러나 지켜봐주기- 『적당한 거리』

by 책닮녀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초보 새댁이었던 나는 요리에 서툴렀다. 토독토독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문득 부침개가 먹고 싶었다. 그것도 엄마표 부침개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엄마, 부침개 레시피 좀 알려줘 봐.”

엄마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냥, 부침가루 넣고, 오징어 넣고, 부추랑 양파 같은 야채 넣고, 물 좀 붓고 부치면 되지. 계란도 넣으면 맛있고”

“그런 걸 넣으면 된다는 건 나도 알지~ 그러니까 얼마나 넣어야 해?”

엄마는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 또 대답하셨다.

“부침가루랑 물이랑 조금씩 넣어보고 휘휘 저어 보면 되지. 너무 되직하지도 너무 묽지도 않으면 돼.”

답답한 나는 또 물었다.

“그럼 오징어는 얼마나 넣어? 계란은 두 개?”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적당히 넣어봐. 넣어보고 저어 보면 적당한 게 느껴질거야.”

엄마와 전화를 끊고 나는 더 막막해졌다.


도대체 ‘적당히’라는 건 어느 정도일까?


요알못인 새내기 주부 시절 나는 그 ‘적당히’가 가장 어려웠다.

요리라는 것이 여러 가지 재료가 적당히 들어가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 고유한 맛을 내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우러져 나만의 맛을 찾아간다. 때때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는지,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옆에 있는 사람이 슬퍼할 때는 어떤 손길을 건네야 하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고 막막하다. 내 맘을 몰라줘서 서럽고, 오해의 순간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기도 한다.


여기 간단한 답이 있다.

그건 바로 인생을 먼저 산 엄마가 알려준 레시피처럼, ‘적당히’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적당히’가 참 어렵지만 말이다.



전소영 작가의 <적당한 거리>는 인간관계에 서툰 내게, 편안함을 선물한 그림책이다. 책은 초록빛 식물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떤 식물은 물을 좋아하고, 어떤 식물은 일광욕을 좋아하고, 또 어떤 식물은 향기를 내뿜는 걸 좋아한다. 작가는 이렇게 식물들마다 성격이 다르듯, 너와 내가 같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상대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고 한다.

우리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나의 방식으로 바꾸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에게 어울리는 말과 손길을 건넨다.


또 식물은 관심이 지나쳐도, 조금만 소홀해도 이내 곁을 떠나버린다. 가끔은 가지를 쳐 나아갈 곳을 손 봐줘야 하고, 때때로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맛보게 하고,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보금자리를 조금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런 식물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도와주는 것뿐.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모진 풍파를 견디며 성장할 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끔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따스한 코코아 한잔을 나누거나, 그도 아니면 작은 위로를 건넬 뿐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안다’라는 이유로, 때때로 내 멋대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는 ‘안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진정한 ‘안다’의 의미라는 것. 또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이라고도 한다. 식물이 잎을 떨굴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는 것처럼, 한발 물러나 뒤에 서서 지켜보고 적정한 때에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안다’의 참 의미이다.



식물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럼 ‘적당히’라는 이 어려운 걸 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깝다는 이유로, 혹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자. 그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알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쁜 일에, 슬픈 일에 두 발 벗고 달려 나가 내 몸을 던지기보다는 뒤에 서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 적당한 거리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내가 건네야 할 마음과 손길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자신의 맛과 향을 찾아 나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당한 거리를 꼭 기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라디오에서 이런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친구가 이번에 큰일을 치렀는데, 제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에 진행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를 오랫동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친구를 그대로 이해하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오랫동안 바라보자.

슬퍼하는 순간, 아파하는 몸짓, 고통스러운 말 모두 지켜봐 주고 들어주자.

그렇게 눈으로 살피고, 귀로 기울이다 보면 상대에게 적당한 손길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08화동물에 진심인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