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지지 않으려면

위기가 곧 해결책- 『열매하나』

by 책닮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바나나 한 개를 온 가족이 나누어 먹던 장면이 떠오른다. 귀한 몸값을 가진 덕에 부자의 상징이 되기도 했던 바나나는 이제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과일이 되었다. 한 끼 식사를 대신할 만큼 든든한 포만감에 다이어터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아이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다. 그런 바나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인 바나나는 지난 1950년대에 이미 멸종된 적이 있다. 당시는 ‘그로미셀’이라는 품종의 바나나를 먹었다. 단지 모양 바나나 우유와 향과 맛이 꼭 닮은 품종으로 요즘 바나나보다 훨씬 진하고 달콤한 맛을 가졌었단다. 하지만 바나나 암이라 불리는 파나마병의 유행으로 그로미셀은 전멸하고 말았다. 이후 파나마병에 저항성을 가진 캐번디시 품종을 기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지금 우리가 먹는 바나나다.


안타깝게도 캐번디시 또한 멸종 위기에 처했다. 고온현상으로 곰팡이 질병인 블랙 시가 토가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이 없기에, 약 15년 후, 바나나는 우리 식탁에서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란 바나나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꼭 함께 나누고 싶다. 전현정 글, 이유정 그림의 <열매 하나>라는 작품이다.




싱이라는 남자아이가 빨간 열매를 발견한다. 열매 맛에 반해버린 싱은 매일 산을 오르기가 귀찮아 통째로 나무를 뽑아와 자신의 텃밭에 심는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은 뽑아버린다. 싱의 빨간 열매를 맛본 다른 사람들도 모두 원래의 나무를 버리고 빨간 열매 나무를 심는다. 오직 카말 할아버지의 텃밭에만 여러 나무가 자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빨간 나무들이 말라죽게 된다. 빨간 나무를 좋아하던 다람쥐도 죽는다. 싱은 다시 산으로 올라가 이번에는 파란 나무 열매를 가져와 심는다. 역시 사람들도 모두 파란 나무 열매만 심는다. 카말 할아버지만 빼고 말이다. 또 어느 순간 하얀 곰팡이로 뒤 덮인 파란 열매 나무와 그 열매를 좋아하던 토끼도 사라져 버린다. 이번에도 다시 숲으로 가 까만 열매를 가져온 싱, 온통 까만 세상이 되지만, 카말 할아버지는 여전히 알록달록 나무를 키우며 이렇게 말한다.


“신 건 신대로 까끌거리는 건 까끌거리는 대로 다 쓸모가 있지, 서로 어울려 살다 보면 더 강해지고 더 지혜로워지는 법이거든”


싱은 넓은 마을에 할아버지의 텃밭만 덩그러니 남은 것을 보며 그제야 깨닫는다. 무엇이든 서로 어우러져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의 참뜻을.



좋아하는 한 가지만 남겨둔다면, 그것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식물도 다양한 종이 함께 해야 병충해로부터 서로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그렇게 다양한 종의 식물이 존재해야 그것을 먹고사는 여러 동물들이 생존한다. 그러한 식물과 동물들이 있기에 우리 사람 또한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어울려 살아야 강해지고, 지혜로워진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사람도 각자의 개성이 한데 어우러져 세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듯이 자연의 세계도 다양한 품종과 다양한 개체가 함께하여 풍요롭기를 바란다.


많은 시간이 걸려 몸소 깨달음을 얻은 싱은 산에서 발견한 노란 열매를 더 이상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산에 묻을 뿐이다. 그리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가꾼다.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인 주인공을 보며 다행이라 안심하지만, 작가는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을 선택했다. 싱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다시 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세상이다.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

싱이 마음을 다잡아 새들이 날라다 주는 다양한 열매를 열심히 키워냈지만, 결국 세상은 단 한 가지 품종, 돈이 되고, 키우기 편하고, 맛 좋은 것에만 집중한다.

단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환경이라는 큰 산을 들어 움직일 순 없다는 뜻일 것이다. 나 하나쯤 달라진다 한들, 기후 위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싱 같은 단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그림책을 나누고, 이 글을 마주한 단 몇 사람만이라도 싱처럼 변한다면 그래도 조금은 낫지 않을까? 그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은 벌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유리병에 붙은 스티커를 제거하며 정성을 다해 본다. 무심코 비닐봉지를 뽑아 들다 잠시 고민해본다. 음식점에 가서는 용기 내어, 우리 집 용기를 내밀고, 찰랑찰랑한 액체세제보다는 단단한 고체 세제를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이왕이면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제품을, 좋은 환경에서 재배한 식자재에 나의 작은 지갑을 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작고 미미하지만, 뭉쳐지면 큰 변화가 되지 않을까? 이런 실천들이 모여 좀 더 나은 우리가 되고, 결국엔 꽤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 내리라 믿고 싶다.



10대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그레타 툰베리는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기가 곧 위기의 해결책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우리의 행동 습관을 바꾸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알고 있는가?

바나나가 사라질 위기,

계절이 사라질 위기,

우리의 집이 사라질 위기,

우리가 사라질 위기가 지금 닥쳤다.

이 위기를 직면하고 해결책으로 바꾸어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열매 하나>를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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