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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ug 10. 2022

저 자랑 좀 할게요.

나를 인정하고 믿어준 스승이 있나요?

"글쎄요..."

"저는 없어요."

"없었던 것 같아요." 

"없어서, 조금 아쉬워요."



 <그림책으로 내 인생 찾기> 모임에서 스승이라는 주제로 그림책을 함께 보았다. 다비드 칼리가 글을 쓰고 마우리치오 A.C. 콰렐로가 그린『달려!』라는 그림책에는 흑인 레이와 챕맨 교장 선생님이 나온다. 흑인이라고 늘 따가운 시선을 달고 살았던 레이는 백인 친구와 싸움을 하고 교장실에 불려 간다. 여느 때처럼 불공평한 처벌이 내려지겠지 생각하고 있던 중, 챕맨 선생님은 자신에게 권투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챕맨 교장선생님은 레이가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준다. 또,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무작정 권투 선수가 되라고 하지 않고, 살아갈 날에 대한 인생의 충고도 잊지 않았다. 챕맨 교장선생님의 진심 어린 한마디 한마디가 있었기에 레이는 권투 선수가 되었고, 또 좌절이 있었지만 다시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함께 그림책을 보며 질문을 던져보았다. 인생을 살아오며 나라는 존재를 인정해주고 바라봐주는 챕맨 교장선생님 같은 스승이 있었냐고. 나의 질문에 함께 그림책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 선생님이 여럿이나 있는 나로서는 음,,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도 짧게나마 가졌다. 그림책 속 선생님처럼 인생의 모든 것을 알려준 완벽한 선생님은 없었지만,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자신의 방법으로 따뜻한 손길을 건네 준 선생님들이 꽤 있었다. 나는 그들 덕분에 행복했고, 순간 아름다웠고, 살아있음을 느꼈고, 힘든 나날 속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모임을 하는 동안 차마 다 꺼내지 못했던 나의 스승을 글 로나마 자랑해보려 한다. 자, 이제 저 자랑 좀 할게요.





1.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초등학교 2학년 때 옆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전학을 갔다.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 가는 건, 내 방이 생긴 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지만 정든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을 떠난다는 건, 무척 슬프고 두려운 일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선생님은 나에게 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셨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선생님의 여러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남아서 학급을 꾸리는 일을 도와드리곤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학급 내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나와 짝을 지어주셨다. 그중에서도 나와는 조금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와 짝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나는 그 친구가 하는 행동이나 말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땐 나도 어리고 어렸으니까.  


 한 번은 그 친구가 학교에 오지 않자 선생님은 나에게 집에 가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집이 학교 코앞이었기에 갔지요^^;;) 선생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킬까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그때서야 나는 그 친구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늘 나의 맘대로 따라와 주지 않아 짜증 나고 화가 났었는데, 가정환경을 보고 나니 그 친구의 어려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의 그릇을 넓게 바라봐 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선생님의 마음이 감사했다.


 한참이 지나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알게 모르게 촌지를 건네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학 간 딸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마음으로 소정의 선물을 준비해 갔던 엄마는 선물을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고 하셨다. 청렴결백하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던 선생님. '너는 언젠가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하셨던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힘들 때마다 선생님이 하신 그 말씀을 새긴다. 나는 할 수 있다고.





2. 질풍노도의 시기,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학급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선생님이셨다. 모둠별로 교환일기도 쓰고, 생일이면 파티도 하고, 가정 방문도 하는 조금은 유별난 선생님. 무슨 일을 해도 의미 없고 짜증 나게만 느껴지던, 관심이라고는 우리 젝키 오빠들 밖에 없던 중학교 2학년 소녀였던 나는, 그런 선생님의 열정이 너무나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반항 아닌 반항을 하곤 했다.


 한 번은 학급 문고를 만들겠다며 각자 자유롭게 글을 써서 제출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학급문고에 내 글이 실리기를 원치 않는다며 쿨하게 제출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 글은 빠져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모둠별 교환일기와 제출한 독후감에서 나의 글을 발췌해 꽤 많은 양을 담아주셨다. 지나고 나서 보니 학급문고는 추억이 되어 얄랑꼴리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고, 내 글이 있어서 더 특별하고 뿌듯했다.(심지어 이때 글을 좀 잘 썼는걸??? 하고 느꼈다는;;)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아무도 없었지만, 가정방문을 해야 한다며 우리 집 까지 오셨던 적도 있다. 어쩌면 시키는 일마다 토를 달고, 반항하는 나를 미워하고 내버려 둘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나를 놓지 않으셨던 것 같다. 반항하는 나에게 따뜻하게 말씀해 주신 적은 없으셨지만, 그 대신 진심이 잔뜩 묻은 팩폭을 날려주시던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너무 맞는 말씀만 하셔서 더 화가 났었지만, 돌이켜 보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이었구나,,, 끝까지 나를 놓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멀리서나마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선생님, 늦어서 죄송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음, 근데 왜 지금 또 만나도 선생님이랑은 '그게 아니죠!' 하며 톡톡 쏘아붙일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





3. 지금도 내 맘에 내리꽂은 한마디를 하신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참 공교롭게도 2학년 선생님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사실 고2 선생님과의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맘에 딱 한마디를 날리고 오랫동안 남아 계신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공부만 잘하면 완벽한데!"라는 말.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오랫동안 적잖이 충격을 먹었다. 서울대를 졸업한 선생님 눈에는 아마도 내가 무진장 모자랐지 싶다. 그렇게 공부 못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뭐 또 딱히 뛰어나게 잘하는 공부도 아니었으니 뭐라 대꾸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선생님은 늘 나의 성적에 관해 그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걸 야무지게 잘 해내는데 왜 공부는 못 할까 하는 눈빛으로. 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죽자고 공부해서 완벽해졌으면 나는 지금 더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까? 그 말이 왜 그리도 싫었는지, 쳇! 공부를 꼭 잘해야 완벽한가? 그리고 사람이 꼭 완벽해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맘속으로 되받아치며 더더욱 공부를 멀리했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아쉬워서, 마음이 가서, 인생의 선배로서 이것만 잘하면 더 잘될 것 같은데.. 하는 안타까움의 충고라 애써 믿어보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그런 말을 내뱉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림책 속의 선생님처럼 나를 무한정 믿어주던 분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각인되어 내 맘 구석에서 비키지 않는 선생님. 험한 세상 속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무른 마음에 생채기를 내어 딱지가 않게 해 준 선생님이다. 이런 선생님이 가슴속에 머물고 있는 것도 자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4. 그 시절 나를 웃게 해 준 선생님


 고등학교 시절 내내 좋아하던 선생님이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싫어하던 선생님. 무서워하던 그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나와는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오히려 좋았다. 사실 수업조차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선생님이었는데, 어쩌다 내가 빠지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교내 방송부로 선생님들과 친분이 있는 편이었고, 교무실에 자주 드나들었었다. 그 와중에 교무실에서 교감 선생님과 언쟁을 높이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학교의 편이 아니라 학생의 편에서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홀딱 반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구나 하고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아침 선생님 책상에 바나나 우유, 일명 단지 우유를 올려두고, 가끔 쪽지도 쓰곤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하염없이 무섭고 엄격한 선생님이지만, 나에게는 늘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공부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는 선생님. 사회가 녹록지 않다는 걸 넌지시 센스 있게 알려주는 선생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알려준 선생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나의 바나나우유 값을 돌려주겠노라며 맛있는 회를 사주시던 선생님.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이룬 게 없는 것 같아 작아진 마음에 찾아뵙지 못했다. 이제는 은퇴하셨을 선생님을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만나 뵙고 싶다. 늦지 않게 갈 수 있을까요? rick 선생님,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더요!


 

치열한 경쟁 때문에 나의 선생님 자랑에 떡하니 한 자리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 낭랑한 목소리가 예쁘다며 사랑을 듬뿍 담아주신 성당 고릴라 선생님.

나의 이야기를 너무너무 잘 들어주던, 대학생이라서 더 잘 통했던 성당 전례부 방글이 선생님.

집에도 초대해 주고 고등학생인 나를 데리고 영화도 보러 가준, 나에게 국어사랑을 알려준 학원 선생님.

얼굴이 중요하지 않아, 열심히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알려준 아나운서 아카데미 선생님.(외모 지적을 하지 않은 유일한 선생님이셨어요!!!!!)

그리고 지금 인생의 새로운 자리에서 조금씩 나아가도록 이끌어주고 있는 수많은 멘토 언니 선생님들까지.




 흔히들 자신에게 챕맨 교장선생님처럼 특별한 선생님이 없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가만히 그 기억 속으로 돌아가 보면 분명 한 장면 즘은 나를 믿고 손잡아 준 누군가가 있을 테다. 꼭 학교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성적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나를 다정하게 바라봐 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내 인생의 스승이 아닐까? 그들의 눈빛을 나는 소중하게 기억한다. 희미한 순간들을 유난히 빛나게 기억하고,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둘도 없는 선생님들이 나는 여러 명이라 참 좋다. 


이런 건 자랑해도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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