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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ug 16. 2022

그림책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이제는 책의 마지막 장면을 현실로 만들 차례.

1층에 살고 있는 우리는 종종 비가 오면 전화가 걸려온다. 쏟아지는 비에 괜찮냐는 물음. 부모님의 걱정을 담은 전화. 사실 1층이긴 하지만 성인 남자의 키보다 높이 위치해 있고 신도시다 보니 배수에 크게 취약하지 않은 지역이라 한 번도 피해를 입어 본 적이 없다. 며칠 전, 대한민국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우며 폭우가 쏟아졌다. 유의하라는 각종 안전문자가 바쁘게 울려댔지만 나는 긴박한 상황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중창을 굳게 걸어 잠그면 바깥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기에, 창문을 열 수 없다는 핑계로 뽀송뽀송하게 집에서 에어켠을 켜고 있었기에 정말 까맣게 몰랐다. 그저 여느 때처럼 밤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단톡방에 뜬 헉 소리 나는 메시지를 클릭하기 전까지는.



단톡방 메시지에는 대한민국 중심지의 한 복판인 강남역의 침수 사진이 있었고, 지하철역으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성인 여성이 자신의 허벅지까지 오는 높이의 물을 가로질러 지나는 모습도 있었다. 누군가 조작으로 유머스럽게 만들어 놓은 동영상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비현실적인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다 보니 당시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제야 뉴스를 켜고, 우리 아파트는 괜찮은지 우리 동네는 괜찮은지 우리나라는 괜찮은지 살피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버스가 물에 잠긴 모습이 보이고, 둥둥 떠다니는 차량 위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 본 맘 카페에서는 바로 옆동네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고, 남편과 자녀들이 물난리 때문에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라는 글들이 속출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해서 무인자동차가 나오고 핸드폰으로 지구 건너편의 일을 하는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이 현실로 바뀌는 모습은 보았지만, 그림책의 한 장면이 그것도 암울한 상상 속의 한 장면이 이렇게도 그대로 재현될 줄이야.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마리아 몰리나 글, 그림/위즈덤 하우스)



침수된 사진을 보자마자 올해 5월에 출간된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라는 책이 떠올랐다. '지구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책이구나, 우리도 언젠가 이렇게 될 수도 있을까? 그전에 우리도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데...' 하며 그냥 넘겼었는데, 뉴스 화면을 보며 침수로 인해 무너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는 도시에 물이 점차 차오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장화를 신고 다녀도 그 불편이 감수될 만큼이었다. 너무 미약해서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키가 작은 동물들은 물에 잠겨 보호캡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산소통을 메고 다녀야 했다. 결국 덩치가 큰 동물들에게도 위협이 되고 말았다. 도시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작은 목소리를 무시하는 바람에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기록적인 폭우는 거대한 상처를 남기고 '잠시' 우리 곁을 떠났다. 말 그대로 잠시. 여전히 비가 오고 있고, 축축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림책에서처럼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이 주는 경고를 여전히 무시한 채, 폭우가 잠잠해지면, 수해 복구가 끝나면 괜찮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잠시 우리 곁을 떠난 폭우가 금방이라도 되돌아오고 말 테니까. 예전보다 더 빨리, 더 자주, 더 강력하게 찾아올 테니까.


그림책 속에서 동물들은 위협을 느끼고 나서야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려 한다. 문제는 해결이 되기는 했지만 예전과 똑같이 돌아갈 수는 없다고 표현한다.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지금 우리 곁에 있을 때 이 소중한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걸,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의 집은, 나의 동네는 별다른 피해가 없어서, 나는 공무원이 아니라서, 나는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이라서 라는 핑계로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은 내가 너무나도 무책임한 것 같아 이렇게라도 글을 쓴다. 그림책 속에만 있을 것 같았던 장면이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믿을 수 없지만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는 그림책의 그다음 장면을 현실로 만들어보면 좋겠다. 그림책에서 그랬던 것처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이루어 낼 차례다. 쉽지 않겠지만, 마음을 기울이고, 앞으로 어떤 대비를 할 것인지 함께 나누고 소통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부디 이번에도 그림책의 장면이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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