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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Sep 26. 2022

탈락을 맛 본 아들에게

아들! 그림책 볼까?

지난주 금요일,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10월에 있을 운동회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월요일에는 꼭 편한 바지를 입고 가야 한다며 몇 번이나 강조했다. 다음 주 월요일은 운동회날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릴레이 경기에서 뛸 반 대표를 뽑는 날이라고 했다. 나름 날쌘돌이인 아이는 자신이 대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며 부푼 주말을 보냈다. 달리기는 못하지만 이론은 탈탈 털고 있는 나는 초반 스퍼트에 집중하는 방법, 바람의 저항을 적게 받는 방법, 마지막 피니쉬 라인 통과할 때의 요령 등 별별 꿀팁을 쏟아냈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한껏 심어주고 또 한편으로는 혹여나 더 잘하는 아이가 있어서 탈락해도 괜찮다며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를 해주었다.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아침에 집을 떠난 아이는 배시시 멋쩍게 웃으며 돌아왔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쉬움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결과를 물었고 그것도 잘한 거라고 칭찬해주었다. 아쉽게 역전패를 당했다는 아이의 말에 뒤에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달리라는 기본 중의 기본을 가르쳐 주지 않은 내 탓 같아 괜히 마음이 헛헛했다. 



아이는 풀이 죽어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엄마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던 걸까? 애를 쓰는 모습이 맘에 걸렸다. 하지만 뭐~ 계주 대표 안 하면 어떠리. 아이에게 그것도 잘한 거라며 3학년 때 또 한 번 도전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일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하면 된다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이가 학원으로 떠나고, 나는 그림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다비드 칼리의『완두』. 그림책 속 주인공 완두는 정말 정말 작은 몸집을 가졌다. 맞는 옷이 없어서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고 신발은 인형의 것을 빌렸다. 하지만 완두는 자신의 방식으로 산책을 즐기고, 연꽃 위에 올라가 혼자만의 시간도 만끽한다. 작은 몸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즐긴다. 


학교를 가게 된 완두. 그때부터 완두는 자신이 조금 평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책상과 의자는 터무니없이 크고, 함께 놀 사람이 없어 홀로 있어야 했다. 선생님 역시도 그런 완두를 가엾게 보았다. 물론 완두는 이 모든 상황이 조금은 불편하고 힘겨웠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자신에게 딱 맞는 회사를 찾아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학원으로 간 아이가 돌아오면 같이 완두를 같이 펼쳐 보아야겠다. 누구나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특성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고. 달리기 시합에서 1등을 하지 못했어도 너는 너고,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아이에게 위로를 건네며 괜찮은 척하는 나에게도, 그런 어른들에게도 완두처럼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나 자신의 마음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일은 시작됨을 잊지 말기를. 



아들! 그림책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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