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초콜릿맛 추억.
새벽 6시, 알람이 울렸다. 이불 안으로 더 들어가고 싶은 아침이지만 오늘만큼은 벌떡 일어났다. 가스 밸브를 열어 국을 데우고는 식탁을 꾸렸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깨우러 갔다. 비몽사몽 하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 역시 곧 일어났다. 세수하고 정신을 차리고는 식탁 앞으로 모였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단출하게 차린 밥상이었다. 아침을 먹지 않는 나도 국물에 밥을 말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오늘은 가족마라톤이 있는 날이었기에.
올해에 아이들과 마라톤에 출전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봄에 5km 한 번, 10km 한 번을 완주했다. 코로나로 인해 개인적으로 원하는 장소에서 시작 시간을 누르고 정해진 거리만큼 달리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조금씩 가까워진 일상에 마라톤 행사도 예전처럼 함께 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칩이 부착된 이름표를 달고 출발선의 센서를 지나, 피니쉬 라인의 센서를 통과하면 기록이 측정되는 방식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이 8살, 6살일 때, 5km 마라톤을 이런 방식으로 치러 본 적 이 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이번엔 10km에 도전했다.
출발 총성과 함께 불꽃이 터지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고, 우리는 사람들의 행렬에 묻혀 출발했다. 3km까지는 꽤 괜찮았는데, 그때부터 첫째의 속도가 급격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달려도 옆구리의 통증을 호소하고 발바닥의 통증에 고통스러워했다. 급기야 촉촉하면서도 빨간 토끼 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 않은가? 아이를 달래야 했다. 예전에도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남은 달리기도 잘할 거라고 자기 계발서에 들어찬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힘들어 죽겠어, 왜 이런 걸 하자고 한 거야'라는 표정으로 나를 원망스레 바라봤다. 나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기회는 이때다 싶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호흡을 해보라고, 인생도 호흡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고, 깊게 마시고 끝까지 뱉어내고 천천히 내 호흡을 느껴보면 달리는 게 힘들지 않다고. 여기에 한 술 더 떠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인생사까지 거들먹거리며 훈수를 늘어놓았다. 아이는 분명 짜증이 났겠지만,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 이런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분명 언젠가 엄마가 끝도 없이 늘어놓던 잔소리같던 그 이야기들이 번쩍하며 뇌리를 스치는 때가 오리라.
첫째와 둘째는 번갈아가며 힘들어했고 우리 부부는 아이가 둘이라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애써 위로했다. 비록 아이들은 힘들어했지만 햇살은 빛나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고, 한강은 은하수처럼 반짝였고, 바람은 살짝 땀이 난 목덜미를 시원하게 위로해 주었다. 차량이 다니는 길을 통제하고 강변북로를 걸어서 통과하는 이 기분이란!!! 말도 못 하게 좋았다. 짜릿했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라서.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넷이 함께라서 말이다.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을 향해 걸었다. 힘들어하던 아이들은 입에 에너지 바 하나씩 물려주니 잠깐 힘을 내었고, 또 주최측이 준비한 게토레이 한잔 마시고 나니 몇 키로는 걸었다. 그렇게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마지막에 서로 좋은 기록에 들어오려고 엎치락뒤치락 있는 힘껏 달렸던 덕분에 지금도 허벅지 통증이 헉헉 소리를 내게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재미있는 추억의 조각이 생겼다.
우리 가족은 주말에 이벤트가 많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캠핑을 가고, 그 와중에 일 년에 두, 세 번 정도는 가성비 호캉스도 즐긴다. 또 함께 성취하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마라톤에 도전하고, 등산도 하면서 인생을 같이 공부하고 느낀다. 함께 야구장에 가고 농구장에 가고 공연장에 간다. 그래서 매주 바쁘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 힘들지 않냐고 누군가는 물어보기도 하지만 신랑과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 아이들이 하는 많은 일들의 첫 경험이 가족과의 시간이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을 살며 마주하는 많은 순간 속에서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면 좋겠다.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늘 함께 해주셨던 부모님이었지만, 아버지의 특성상 바깥 활동이 적었던 나였다. 신랑 역시 장사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두, 세 달에 한 번 정도 놀러 가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신랑과 나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데 더욱 목말라 있는 듯하다. 다양한 일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추억을 선사하고 싶다. 이 모든 추억들이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별 탈 없이 쌓여가고 있지만, 나이 들어서도 우리는 함께 하고 싶다.
중,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함께 캠핑을 떠나 힘을 모아 피칭하고, 같이 커피숍에 가서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끼고는 각자의 책을 읽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심야영화를 보러 밤길을 동행하기도 하고, 멋진 유람선을 같이 타며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 좋겠다. 물론, 그때 바빠서, 각자 연애하느라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 쌓는 이 추억이 가슴속에 다정한 별이 되어 걸어가는 길의 빛이 될 것이라 믿는다. 또 엄마인 나에게도 지치고 힘들 때마다 꺼내먹는 달콤한 초콜릿 맛 추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추억 속에 건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