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나는 OO공주

표정은 내 인생이 지어낸 나만의 작품입니다.

by 책닮녀

학창 시절에 '이것'에 빠진 아이가 한 명은 있었다. 아니, 꽤 여러 명 있었다. 이것에 빠져 있지 않아도 수시로 이것을 바라보며 확인하는 아이가 많았다. 교실 뒤쪽 후문 출입구에 있는 커다란 이것은 늘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재미있는 놀이터이기도 했고, 마음의 안식처 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거울.



쉬는 시간에 보는 것도 모자라서 여러 종류의 손거울을 들고 다니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화장이 금기시되던 학창 시절이었지만, 90년대 그때에도 학생용 팩트(맑게 밝게 자신 있게~! 추억 돋으시죠?)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은 많았다. 거울을 열어 얼굴을 두드리고 예쁜 표정을 지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교실에는 즐비했다. 하지만 화장품이라고는 관심도 없었던 나는, 학생이 무슨 화장이라는 보수적인 학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울로 내 모습을 꾸미고 단장하는 것이 한없이 귀찮았다. 내 돈 주고 거울이라는 것을 사본 적이 없는 그런 아이였다.



어른이 되면, 화장을 하는 나이가 되면 뭐 좀 달라지려나 했다. 아니었다. 학창 시절보다는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울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고, 입술에 무언가를 바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언제나 얼굴도 입술도 매트한 편이었다. 한 때, 아나운서라는 꿈을 꾸면서 선한 인상을 연습하느라(무쌍의 동양인으로 쌍술의 권유를 많이 받았기에)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 시간을 보태어도 거울이 차지하는 내 인생의 비중은 극히 일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조금은 놀랐다.

내가 생각한 표정보다 더 무뚝뚝한 표정, 생기 없는 모습이 거울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서 표정에서 자신의 삶이 보인다고 하는데, 내 인생의 모습이 조금은 삭막해 보여서 여전히 매트한 느낌이어서 별로였다. 학창 시절, 거울 공주라고 불리던 아이들의 표정이 뇌리를 스쳤다. 그 아이들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 화사한 표정이었고 생기 있는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거울을 보지 않는 아이들보다 늘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예쁘고 예쁘지 않고를 떠나 표정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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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보다 중요한 건 쓰임이듯
얼굴보다 중요한 건 표정이다.
외모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표정과 자태는 스스로 지어가는
인간 그 자신의 작품이다.

『걷는 독서』박노해/느린 걸음(p.526)



외모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표정과 자태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거울 속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다니면서 내 표정에는 행복과 감사가 드러나지 않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분노에 차오르지도 않았고 슬퍼 보이지도 않았다. 아직은 그랬다. 단지 푸석푸석 무미건조했을 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었다.



아직 늦지 않은 거라 생각하며 의식적으로라도 생기 있는 표정을 지어본다. 내 마음을 담은 미소를 머금어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빙그레 입술에 힘을 주어본다. 지금의 내 인생이 꽤 행복하기에, 너무나도 감사하기에 내 얼굴의 내 표정도 그렇게 담아내기를 바라며. 거울을 자주 보는 건 여전히 어색하지만, 학창 시절에도 하지 못했던 거울공주 타이틀을 탐내어 볼까 한다. 근데 거울이 어디 있더라... 모니터 옆에 작은 거울 하나 붙여 놓아야겠다. 먼 훗날, 내가 스스로 지어낸 작품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울지를 꿈꾸며, 반드시 그러하리라 다짐하며.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거울공주다.

씽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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