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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Oct 17. 2022

인생을 연주하는 방법

그림책『피아노』처럼


처음 피아노 학원에 갔던 건 여덟 살 때였다. 언니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을 흉내 내고 싶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에 갔다. 유난히 가파르던 계단을 올라 2층에 자리한 곳. 동네에서 꽤 좋은 대학교를 나와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피아노 학원이었다. 강력한 포스를 풍기는 원장 선생님1분과 젊어 보이는 선생님 2분이 계셨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적당한 피아노 학원의 공간은 안쪽의 문을 열면 미로 같은 곳이 있었다. 문 속의 문을 열 때마다 하나씩 드러나는 공간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 안에 하나씩 자리 잡은 피아노. 그리고 그곳에는 다 쓰고 볼펜 심을 빼버린 모나미 볼펜의 껍데기만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심지가 빠져나오지도 않는 모나미 볼펜의 용도는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나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젊은 선생님과의 피아노 시간은 대체로 즐거웠다. 이따금씩 틀려서 주의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칭찬을 받을 때가 더 많아 신이 났었다. 마디가 굵고 손가락 끝이 개구리처럼 생긴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개구리 손가락이라는 놀림을 당하곤 했는데, 그 덕분에 피아노 치기에 매우 적합했다. 선생님과의 짧은 레슨이 끝이 나면 드르륵 옆으로 미는 문을 열고 미로를 통과했다. 나는 이 순간이 제일 재미있었다. 새로운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막상 피아노만 차지하고 있는 좁은 공간에 들어가 연습을 할 때는 지루하고 답답했지만 드르륵하고 옆으로 미는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이 왠지 모르게 짜릿했다.




피아노 연습을 하며 나는 하얗고 까만 모나미 볼펜 껍데기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레슨을 마치고 연습실로 들어가 오늘 배운 부분마다 열 번씩 혹은 다섯 번씩 연주하라는 숙제를 받았다. 그 숙제를 몇 번 했는지 세는 용도였다. 피아노 건반의 오른쪽 제일 끝에서부터 왼쪽으로 열 번째 되는 건반에, 빈 껍데기만 남은 모나미 볼펜을 올려두었다. 한번 연습할 때마다 오른쪽으로 한 칸씩 옮기며 오른쪽 끝까지 갈 때까지 연습을 했다. 몇 번씩 연주했는지 체크를 하기 위해 올려둔 하얀 몸통에 검은 꼭지를 가진 빈 모나미 볼펜은 마치 피아노 건반 하나를 뚝 떼어내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얼른 미로의 출입구를 드르륵 열고 싶어 모나미 볼펜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건반을 연신 눌러댔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피아노를 잘 칠 줄 모른다. 



나의 피아노 배움은 신기했고 즐거웠지만, 1주일의 한번 원장 선생님의 레슨을 받는 날이면 늘 배가 아플 만큼 긴장을 하곤 했다. 피아노 연주 실력이 초급에서 중급으로 중급에서 고급으로 넘어갈수록 원장 선생님의 목소리 데시벨도 높아져 갔다. 그녀의 주파수도 점점 고주파가 되어갔다. 하루는 늘 틀리던 부분에서 급하게 넘어가면서 실수를 했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피아노 소리보다 높아진 데시벨에 잔뜩 움츠러든 나는 또 실수를 하고 만 것이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원장 선생님의 손은 내 손을 내리쳤다. 건반과 부딪히며 꽝 소리가 원장실의 공간을 메웠다.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굳게 닫힌 공간에 놓여 있던 원장실에서 꽝 하는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지금도 소리에 예민한 나는 손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때의 소리가 두려웠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원장실에 들어가 레슨을 받는 게 극도로 긴장이 되었고, 늘 배가 아파졌다. 원장 선생님은 수완이 좋아 학부모들에게는 아주 서글서글 사람 좋은 말들을 건넸다. 엄마에게는 심지어 나의 손가락 구조는 피아노 치기에 매우 좋은 손이고, 연주 실력도 또래보다 뛰어나다며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했었다. 그랬기에 엄마는 내가 피아노를 잘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대로 말하기보다는 그저 피아노 대신에 공부 학원에 다니겠다며 엄마를 설득해 피아노를 기어코 끊고야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소질이 있다는 그 말이 엄마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 함께 배웠던 언니는 틈만 나면 음악사에 가서는 피스를 샀다. 좋아하는 가수의 악보를 모아 연주하고 즐겼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피아노 뚜껑을 여는 것조차 싫었고, 언니의 둥당 거리는 피아노 소리도 별로 반갑지 않았다. 들리지도 않는 꽈앙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질 것 같아 내 손가락의 구조 따위는 무시하고 즐거웠던 피아노 세포들마저도 꾹꾹 봉인해 두었다. 아주 오랫동안. 




엄마가 되어 내 아이가 피아노 연주를 하기 시작하면서 집에 피아노를 들이고 가장 다정한 선생님을 찾아 학원을 등록해 주었다. 세월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딸이 하는 연주라 그런지 뚜껑조차 열기 싫었던 피아노의 기억이 조금은 희미해진 듯했다. 딩동 딩동 자유롭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연주를 하고 싶기도 했다. 슬픈 날에는 슬픈 노래를 듣는 대신에 내가 직접 슬픈 노래를 연주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스타카토가 잔뜩 들어간 곡을 연주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왜 피아노를 그만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저 피아노 치는 게 싫다고 생각했다. 드르륵 다른 세상문을 열고 미로를 통과해 모나미 연필을 한 칸씩 옮기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던 느낌은 어느새 익숙해져서 사라져 버렸다. 작은방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정겹다는 사실보다는, 커다란 방에서 뚜껑을 열어놓은 채 울려 퍼지던 꽝 소리가 더 강렬해 더 이상 뚜껑을 열고 싶지 않았었다. 그 모든 게 원장 선생님의 탓은 아니겠지만, 악보대로 잘 제대로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피아노와 영영 친해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림책 『피아노』에서는 한 가족이 새 피아노를 집에 들인다. 그러고는 어떤 연주도 못하게 '안 돼'라고 외치는, 눈썹에 힘을 잔뜩 준 아빠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뚱땅뚱땅 정말 아무렇게나 연주를 시작한다. 그 연주 속에서는 기쁨의 새가 지저귀고, 크릉 크르릉 악어와 호랑이가 마음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소리도 들린다. 피아노 연주 속에서 주르륵주르륵 마음의 비가 내리고 꾸룩꾸룩 저 깊은 슬픔의 바닷속으로 잠수도 한다. 아빠의 인기척이 들리자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피아노에서 나온다. 비록 피아노 연주는 끝이 났지만, 자유로운 경험 속에서 느꼈던 자유로운 감정은 아이들을 더 즐겁게, 단단하게 새롭게 만들어 준다. 




원장 선생님의 채근과 압박을 멀리하고 내 방식대로 피아노를 즐기면 되는 거였다. 소리에 예민했던 나는 그 꽈앙 소리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뚜껑조차 열 수 없었지만, 모나미 볼펜을 오른쪽으로 한 칸씩 옮기는 행위보다는 모나미 볼펜으로 연주를 해보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내 방식대로 상상의 세계에서 연주를 하고 즐길 줄 알았다면 지금쯤 나는 피아노와 서먹하지는 않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피아노가 좋아한다는 그 손으로 더 따뜻하게 어루만져 내 색깔을 담아낸 연주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바이올린을 켜는 방법, 붓 칠하는 방법, 야구방망이를 잡는 방법은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게 언제나 옳고 맞는 방법은 아니다. 바이올린을 기타처럼 줄을 튕겨 연주하면 또 색다른 분위기의 연주가 되고, 붓에 적당한 물을 머금고 칠하는 대신 뻑뻑하게 그리면 더 짙은 감성이 묻어난다. 야구방망이를 반드시 손잡이만 잡고 치지 않아도, 몸통을 잡고는 짧게 치는 것도 때론 뜻하지 않은 내야 안타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행위에 꼭 정해진 정답은 없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일 뿐. 인생을 살아갈 때도 그림책 속 아이들 연주처럼 자유롭고 솔직하고 또 대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고유한 선율이 완성되는 법이니까. 그 선율이 쌓이고 쌓여 나만의 악장이 될테니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즐기며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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