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여행을 다녀와서
2박 3일간의 엄마 아빠와의 여행이 끝이 났다.
결혼 전,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신랑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자고 했다. 몇 번 인사는 드렸지만 진척 없는 결혼 행보에 조바심이 났던 신랑이 실행에 옮겼던 일이다. 방 2개를 빌려 한 방에는 신랑이 혼자 사용하고, 다른 큰 방에는 우리 가족이 묵었다. 그 이후 우리는 결혼을 했고, 언니네도 결혼을 했고, 우리는 아이를 낳았고, 언니도 아이를 낳았고, 우리는 둘째를 낳았고, 언니네도 둘째를 낳았다. 그렇게 십여 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아이들이 그래도 그럭저럭 걸어 다니고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여행을 가자며 이야기했는데, 코로나라는 무시무시한 놈이 떡하니 가로막아 우리는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설, 추석 일 년에 두 번 친정에 가는데, 갈 때마다 어디 좋은 곳에 놀러가자고 하지만, 막상 5시간 동안 오른 다리를 뗐다 붙였다 하며 달려온 터라 어느 곳도 가고 싶지 않다며, 다 같이 집에 옹기종기 모여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고,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아빠는 코로나에 걸리신 이후로 급격히 세월의 힘에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런 아빠가 세월의 지배를 넘어 세월의 명령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는 날이 오기 전에 여행을 가자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제주도를 생각했지만, 부산, 경남에서 나고 자란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강원도에 간 적이 없다고 하셨다. 최소 다섯 시간 반이라는 이동시간에 한참을 망설이다 목적지를 강원도로 선택했다. 그래도 아빠, 엄마에게 인생을 끝내기 전에 동해바다를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다. 남해바다와는 또 다른 그 감동을 나만 매번 느끼는게 미안했다.
부산에서 자차로 움직이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관계로 하루 전날 경기도에 위치한 우리 집으로 오셨다. 기차역에 마중을 나갔고, 나는 엄마 아빠와 식사를 하러 갔다. 언니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오랜만에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의 엄마, 아빠와 함께 도란도란 밥을 먹으니, 어린 시절 막내딸로 돌아간 듯하여 재잘재잘 수다가 나왔다.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다가 고개를 들어 식사를 하시는 엄마, 아빠를 보았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떠 넣는 아빠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웃는 엄마의 얼굴 속 주름에는 고생의 흔적이 묻어났지만, 그럼에도 한 식탁에서 추억을 찬 삼아 먹는 밥이 참 좋았다.
다음 날, 엄마 아빠와 함께 우리는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속초에 도착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울긋불긋 단풍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론 단풍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람 반 단풍반을 구경하다 오기는 했지만, 함께 막걸리 한잔 걸치고 오른 산 정상에서 오래오래 남을 사진을 위해 찰칵찰칵 버튼을 눌러대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바닷가를 거닐고, 시장 구경을 하고, 피곤했지만 함께라서 즐거운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둘째 날, 평창에 있는 목장을 구경하고 강릉으로 와서는 오죽헌에 방문했다. 커피가 유명한 강릉이기에 온 가족이 함께 커피 한잔 하러 가기도 했다. 향긋한 시간이었다. 넓고 넓은 강원도를 아빠, 엄마께 모두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두 분 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두 분이 살면서 강원도에 오시는 일이 또 있을까?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아 욕심이 생겼지만, 하는 수 없이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비가 내렸다. 생각보다 많은 비에 모든 일정을 접고 집으로 향했다. 아무 일정도 없었지만 4시간 남짓 걸린 이동 시간으로, 그리고 며칠 동안 쌓인 피로감으로 두 분은 힘들어 보이셨다. 원래 계획은 하루 더 우리 집에 묵으려 하셨지만, 피곤함에 집에 가고 싶다 하셨고 그렇게 기차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셨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피곤함에 눈을 붙이고 잠이 든 엄마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다음에 또 엄마, 아빠 강원도에 모셔가겠다고. 또 가면 되지 못갈 것 뭐 있겠냐고.
두 분이 이제는 못 오실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물론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은가. 또 사실 강원도가 아니어도 어떠한가. 두 분은 그저 자식들과 함께 하는 시간, 자식들과 함께 먹는 식사가 좋았을 터. 저 멀리 있는 좋은 것들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워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는 조금 더 자주 가까이에 있는 행복함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다. 자주 찾아뵙고 자주 전화하고 자주 표현하는 것이 작지만 소중한 행복함 아닐까? 멀미도 피로도 동반되지 않는 행복한 순간 아닐까? 엄마 아빠와의 강원도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우리들은 언제나 엄마, 아빠와 함께 인생을 여행하고 있음을 곱씹어 본다.
엄마! 아빠! 내년에는 또 좋은 곳에 갑시다~
체력 키워야 하니까 오늘부터 운동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