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은 요정이 아닙니다.
꿈꾸는 사람은 요정이 아닙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꿈꾸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꿈꾸는 사람도 배가 고픕니다. 단지, 참을만할 뿐이죠. 꿈이 있으면 어떤 시련도 모두 이겨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사람의 기본 욕구인 배고픔도 이겨내는 초인적인 힘이 꿈에게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꿈이 있어도 배가 많이 고픕니다. 오히려 꿈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꼬르륵 소리가 BGM처럼 함께 합니다. 어릴 적, 돈은 없고 오로지 꿈만 있던 시절, 배가 불러야 마땅하거늘 항상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고시원 창문으로 보이는 어묵 Bar. 어묵 하나에 생맥주 한 잔을 걸치는 사람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그리 사치스러운 안주도 아닌데 섣불리 먹지 못하고 편의점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소울 친구 삼각 김밥에게 손을 내밀었지요. 삼각 김밥 하나만 있으면 꽤 참을 만했습니다. 차갑고 딱딱한 밥 알갱이들이 나의 체온을 담은 아밀라아제와 뒤섞여 바쁘게 턱관절을 운동을 하다 보면 배고픔은 조금씩 잊혀졌거든요. 그러다 보면 천둥 번개 같던 BGM은 조금씩 줄어들고 고요한 시간이 찾아옵니다. 때로는 반찬 없이 먹어대는 삼각김밥이 목구멍의 수분을 모두 빼앗아 케케켁 케케켁 새로운 BGM을 재생하기도 하지만요, 눈물 젖은 삼각 김밥은 꿈을 향한 나의 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 상징물이자, 허기짐을 달래주는 소중한 식량이었습니다.(물론 지금은 삼각김밥이 지긋지긋하여 쳐다보지도 않습니다만) 꿈꾸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다는 말 때문에, 배가 고픈 나를 꿈이 덜 간절한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해요. 꿈꾸는 사람도 사람이니까, 참을 수 있는 만큼은 꼭 먹고, 든든히 먹을 수 있다면 더 먹고,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꿈꾸는 사람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음.. 저는 30여 년의 인생을 거의 꿈을 꾸며 살아왔어요. 기미와 주근깨 그리고 이제는 주름도 많이 생겼네요, 꿈을 꾸어도 사람은 늙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아요. 늙으면 모든 일이 힘에 부치고, 꿈을 좇기란 지극히 어려워집니다. 단지 힘듦을 버티어 낼 만큼 꿈이 좋은 것뿐이죠. 그저 좋아서 오로지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나이와 상관없이 꿈을 꿉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꿈꾸는 사람은 곱게 늙는다는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생기가 있어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삶의 의욕으로 눈망울은 반짝이고, 나만의 무대 위에서 빛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주 미소를 짓는 답니다.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자신이 그럴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두텁고 자신을 향한 사랑이 충만하거든요. 또 함께 꿈꾸는 이에게 다정 어린 말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늙더라도 곱게 참 곱게 늙어갑니다.(괜히 거울을 보게 되네요.)
글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꿈이 생겼습니다. 비록 생계형 작가는 아니지만, 때로는 글을 쓰느라 끼니를 놓치고 배고파합니다.(심지어 지금은 급체로 인한 구토 후 글을 쓰고 있네요;;;저 왜 이러는 걸까요?) 그럴 때면 믹스커피를 머그컵 가득 탑니다. 새로운 BGM을 연주하며 아우성치는 뱃속에, 뜨겁고 달콤한 수액을 놓아줍니다. 몇 시간 동안 모니터와의 눈싸움으로 빨간 토끼눈이 되고, 키보드와의 밀당으로 미간의 주름이 깊게 파여 가지만, 그렇게 오랜 사투 끝에 글을 완성하고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싱긋 웃음이 납니다. 오늘도 꿈을 꾸고, 꿈을 기르는 삶을 살아가며 곱게 늙어가려 애쓰는 중입니다. 그렇게 꿈같이 사는 중입니다. 요정은 아니지만 마치 요정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