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강좌 모집 글을 보았다. 공고를 본 날부터 가슴이 설렜다. 꼭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6월에 시작하여 9월까지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7월과 8월은 아이들 방학이 있어 참여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 이전에도 하고 싶지만 아이들 돌보느라 포기했던 몇몇 강좌들이 생각났다. 신청기간이 끝나고 나면 그냥 할걸 그랬나 봐 하곤 후회하곤 했다.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하다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보다는 GO라고 늘 외치는 나였기에 덜컥 신청을 했다.
내가 그렇게도 듣고 싶었던 강좌는 그림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기후위기를 살아갈 미래세대에게 전하는 그림책 편지'라는 프로그램. 기후위기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그림책이라는 결과물로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림책 제작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설레는 시간이었지만, 무엇보다 기후위기라는 주제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다른 그림책 제작 수업과는 달리 이번 강좌에 선뜻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기후위기'라는 내가 관심 있는 주제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첫 시간과 두 번째 시간은 온라인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인문학 강좌를 들었다. 남성현, 곽재식 교수님의 강좌를 들으며 전문가들 마다 다른 관점으로 기후위기를 해석하고 있구나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우리는 기후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그게 하나의 작은 실천이든 거대한 시민운동이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거라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었다. 온라인 강연 이후에는 오프라인으로 만나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환경에 관한 책을 함께 읽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고 있는 기후위기에 관해 토론을 이어갔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환경, 기후 변화로 나에게 생긴 문제점, 먹고 입고 즐기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환경적인 부분까지. 다방면에 걸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주간의 토론을 끝내고 드디어 그림책 제작에 들어갔다. 그림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그림작가들의 능력을 늘 높이 샀다. 글보다는 그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림책을 제작하며 글 작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서사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림만 멋들어지게 그린 그림책 보다 메시지가 분명하고 스토리가 탄탄한 그림책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림도 훌륭해야 하지만, 어쨌든 기승전결의 이야기 흐름이 책 한 권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림책 작가님들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 어려운 글과 또 그에 맞게 어려운 그림들을 어떻게 재미있고 멋있게 표현해 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림책 제작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이 이야기를 쓸까? 저 이야기를 쓸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만 늘어가는 시간이었다. 지우고 쓰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가는 회귀 본능은 계속 계속 발동했다.
그럼에도 마감은 신비한 힘이 있다. 늘 밤 열두 시가 되어서야 1일 1 글의 인증을 위해 발행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원고 마감을 2주 정도 앞두고 글을 완성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너무 유치하고 진부한 스토리라 그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첫 술에 배부른 사람은 없으니까. 돌을 다듬는 마음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원고를 쓸 때는 스토리가 쉽게 풀리지 않아 글 작가의 위대함을 우러러보았다면, 또 그림을 그릴 때는 아주 섬세한 작업까지 신경 써서 표현해야 하는 그림에 혀를 내둘렀다. 한 장면을 완성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림작가들이 오랜 기간 동안 정성 들여 내놓는 작품이라 생각하니 그림책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해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몇 날 며칠 밤을 새우고, 작가 소개와 담고 싶은 말을 정리하여 원고를 제출했다.
그리고 몇 주 후,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연락이 왔다. 평소 하고 있는 일과 시간이 맞물려 출판기념회에는 참석할 수가 없었다. 담당자는 도서관에 책을 2주 동안 전시하고 있으니 다른 분들의 작품도 볼 겸 방문하여 나의 그림책을 수령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오늘 나는 아이들과 도서관을 찾았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9명의 작가가 쓰고 그린 그림책이 우리를 맞이했다. 왼쪽 한 귀퉁이에는 내가 만든 그림책이 자랑스럽게 놓여있었다. 엉성한 서사에 미흡하기 그지없는 그림솜씨까지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완성했다는 게 뿌듯했다. 중도 포기한 분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했다는 게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해 주었다. 아이들의 방학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든 만들어 낸 나 자신이 기특했다.
아이가 둘인 나에게 셋째 아이라도 생긴 것 같다. 만약 내가 바쁜 일정 때문에 신청하지 않고 그냥 마음을 접었다면, 세상에 내 이야기를 내놓기가 부끄러워 그만하겠다고 했다면 이 자랑스러운 순간을 느껴보지 못했겠지. 내 그림책을 보더니 남편은 네가 그렸냐며 재차 물었고, 뻥치지 말라며 칭찬이 아닌 척 은근한 칭찬을 해주었다. 시댁에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인지 조카에게도 한 권 주라고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함께 간 아이들은 엄마 그림책도 누군가가 대출해 갈 수 있냐며, 몇 원에 판매하냐며 물었다. 아직은 대출도 안되고 판매도 안되지만 ISBN정식 등록을 한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아이들 앞에서 뿌듯했다.
그림책 작가 수식어가 부끄럽지만 이렇게 나는 그림책 작가로 데뷔 아닌 데뷔를 했다. 다음 책이 또 이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언젠가 마음을 쏟은 나의 또 다른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이 소중한 마음이 마음에서 실천으로 옮겨지기를. 그렇게 노력하리라 다짐해본다.
저의 셋째 자식,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항상 웃는 고래, 상이와 괭이』 글. 그림 책닮녀
항상 웃는 고래, 상괭이를 아시나요?
항상 웃는 고래, 상이와 괭이는 물고리 잡기 놀이를 좋아해요. 여느 때처럼 바다로 나가 신나게 헤엄치던 상이와 괭이. 그런데... 갑자기 상이와 괭이의 웃는 얼굴이 우는 얼굴이 되어버렸어요.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