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픈 것도 감사하다는 걸.

사랑하는 아들과의 하루

by 책닮녀

계획형 인간이 즉흥형으로 살면 병이 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 구나하고. 지난 토요일, '화성 행궁 갈래?' 한 마디에 '콜!'을 외치던 아들은 화성행궁 투어를 끝내고 수원 통닭집에 도착했을 때, 목의 통증을 호소했다. (화성행궁에 다녀온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요기로! 화성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brunch.co.kr))



그날 일정이 피곤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아이를 얼른 재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의 상태를 보러 갔더니 서늘한 기운이 들어 체온을 재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자는 아이를 깨워 해열제를 먹였다. 하지만 아이는 잠에 푹 들지 못하고 중간중간 깨어나 고통을 호소했다. 자신이 코로나에 재감염되었을까 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괜찮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를 달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구석에 넣어두었던 자가진단 키트를 꺼내 들었다. 이쪽 저쪽을 야무지게 찔렀다. 결과는 음성. 아이는 음성이라는 사실을 보고는 열이 모두 내린 사람처럼 기운이 펄펄 끓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곧 열이 오르면서 아이는 힘없이 늘어졌다. 그렇게 주말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던 열은 오늘 아침이 되서야 조금 괜찮아졌다. 약에 의존하지 않아도 37.5도 정도로 정상 범주 가까이 돌아왔다. 하지만 학교를 보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듯하여 오랜만에 아이를 데리고 가정보육을 했다.





아들과 보내는 오랜만의 데이트는 생각보다 좋았다. 언제나 놀아달라고 말하는 아이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제 조금 컸다고 함께하는 시간과 각자의 시간을 나누어 활용할 줄 알았다. 아침에 줌 수업 때문에 2시간은 숙제를 하고 혼자 놀고 있으라는 내 말에 아이는 알았다고 했다. 대신 그 전에 게임을 해 달라고 했고, 뭐 평소 보드게임 지옥에 오랜 훈련이 되어 있는 나는 '그쯤이야' 하며 아이와의 게임을 즐겼다. 나의 줌 수업이 끝나고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다른 게임을 내밀었다. 내 수업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려준 모습이 기특해 못 이기는 척 함께 게임을 했다. 사실 나도 보드게임은 꽤 좋아하고, 아직까지는 대부분 승리의 여신이 내 편이라 즐겁게 게임을 했다.



점심을 먹으며 아이는 요즘 빠져있는 한스밴드의 '오락실'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집안에 상주하고 있는 갈색곰 기계에게 노래를 요청하자 이내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엠지 세대와는 거리가 먼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가 빠르게 흘러가는 아이돌 노래보다 우리 세대 추억이 담긴 노래가 흘러나오자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서 춤을 맡고 있는, 춤신춤왕 아들은 어깨를 들썩이고 엉덩이를 요리조리 움직였다. 나도 함께 한바탕 춤을 추며 즐겼다.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밥을 먹고 아들은 30분 동안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내가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책 읽어주기'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아들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들이 가져온 책은 꽤 유머스러운 책이었지만, 점심식사 후 나른한 상태에서 읽다보니 졸음을 몰려왔다. 읽으면서 꾸벅꾸벅 조는 나를 보며 아들은 베개도 가져다주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담요도 덮어주었다. 중간에 깨어나서 비몽사몽 하는 나를 보며 오히려 '엄마, 더 자. 더 자도 되.'하고 배려해 주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들은 내 옆에 앉아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덧 성큼 자라 혼자 놀 줄 도 알고, 엄마와의 하루를 슬기롭게 보내는 법도 알고, 또 엄마를 배려할 줄도 아는 모습이 참 예뻤다. 사랑스러워 꼬옥 안아주었다.



신생아처럼 품에 옆으로 안고는 마구 뽀뽀를 하는 내게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일도 학교 안 가고 엄마랑 집에 있고 싶다. 나 내일도 열나면 집에 있는 거지?"

"그렇지. 열나면 학교 못 가."

아이는 '아싸~'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체온계 버튼을 눌러댔다. 열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미열이 있었기에 아이는 학교를 안 갈 요량으로 나에게 체온계의 숫자를 보여주었다. 그런 아이의 속셈이 훤히 들여다 보여 귀여웠다.

"그래, 그럼 내일은 아빠랑 집에 있어. 엄마 일하는 날이라 오전에 나가야 하거든."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말을 바꿨다. 체온계의 숫자를 가리키며 37.5도가 안 되니 학교를 가도 된다고 말했다. 아빠는 좋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아빠와 단 둘이 있는 것보다는 학교를 가는 게 더 재미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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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느라 바빠서, 밥 차리느라 정신이 없어서, 누나와 함께 있어 사랑을 나누어 주느라, 꽉꽉 눌러 담아주지 못했던 사랑을 그래서 슬그머니 헤져 있었던 사랑 주머니를 오늘 가득 채워준 느낌이었다. 아이는 오늘 하루가 아파서 힘들기보다는 엄마와 함께여서 특별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나 역시도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있었지만, 여유를 부리며 아이와 함께 하는 월요일이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니까. 가끔 이런 데이트도 참 좋구나. 아픈 건 속상하지만 덕분에 소중한 추억 하나가 또 생겨서 감사했다.



학교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정신 승리일까? 아니면 열이 떨어질 때가 되어서 떨어진 걸까? 열이 떨어지지 않아 내일도 학교에 가지 못할 까 봐 걱정하던 아홉 살 장난꾸러기는 정상체온으로 돌아와 잠이 푹 들었다.


아들, 오늘 함께라 너무 좋았어. 그렇지만 또 아프지는 마~

그리고 내일 학교 가서 재미있는 시간 보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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