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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30. 2022

영화의 러닝타임은 엔딩크레딧까지

영화를 사랑합니다

대학 방송국에는 오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부, 뉴스를 취재하고 전하는 보도부, 그리고 제작부와 보도부의 방송을 전달하는 아나운서부, 이 방송을 스피커로 송출하는 기술부, 그리고 오디오 프로그램과 별도로 영상을 제작하는 영상제작부가 있었다. 영상 제작부의 팀원들은 주로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즐겨보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을 하고, 밤새 편집을 해서 영상물을 만들곤 했다. 당시에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만들고 편집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웬만한 노트북보다 더 큰, 마이크가 달린, 칩이 아닌 테이프를 넣어야 하는 방송용 카메라를 사용해 영상을 만들곤 했다. 지금이야 편집 프로그램도 다양하지만 그때는 프리미어 프로(지금도 유명한)를 주야장천 열어놓고 디테일에 열의를 다 하곤 했다.



영상제작부는 늘 영상을 만드는 데에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 학생 신분이었기에 마땅한 장소를 섭외하기도 힘들었고, 배우를 섭외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 때문에 같은 방송국에서 활동하는 부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얻곤 했는데, 나도 독립영화물에 꽤 여러 번 출연했다. 그 시절 나의 선배와 나의 친구와 나의 후배가 쓴 시나리오는 그렇게도 사람을 죽여댔는데 죽는 연기는 하도 해서 2학년이 무렵 즈음부터는 한 번에 오케이 컷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또 함께 제작하고 주연을 맡았던 작품을 '시'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출품하여 장려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였지만 뭐 지나고 보니 이 또한 추억이 되는 듯하다. 요즘 같으면 공모전 수상작이라고 유튜브에 길이길이 게시되었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커뮤니티가 활발하지 않았기에 지금 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으니(실제로 해봤습니다 하하) 이렇게 대놓고 말할 수 있다.



신문방송학이 전공이었던 나는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작품을 수도 없이 보았고(교수님은 왜 수업하기 싫으신 날은 그렇게도 히치콕에게 강의를 맡기셨을까요?), 샴푸 이름인 줄만 알았던 미장센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앵글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 공부하곤 했다. 내 꿈은 아나운서였지만 영상 제작에도 애착을 느끼곤 했다. 아마 내가 조금만 더 영상에 빠져들었다면, 교수님이 히치콕에게 대강을 조금만 덜 맡겼었다면 영화인이 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어떤 영화든 쓸모없는 영화는 없다고 생각하며,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생각하려고 애쓴다. 지금 이 앵글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을 다시라고 외쳤을 촬영감독의 성대를, 이 소리를 후시 녹음하며 생동감을 넣기 위해 온갖 쌩쑈를 했을 음향팀의 움직임을, 이 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전국 야산을 뒤지고 다녔을 섭외팀의 발바닥 물집을 떠올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영화의 모든 장면은 위대하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 대해 예의를 갖추려 애쓴다. 영화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영화관을 뜨지 못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감독과 주연배우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다양한 협찬사와 다양한 공조가 있었기에 한 편의 영화가 커다란 사각형 안에 담겨 빛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엔딩크레딧을 본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장면을 잠깐이라도 내 눈에 스쳐가도록 시간을 내어 주고 싶다. 그리고 영화 한 편이 시작해서 끝나는 그 러닝타임을 온전히 채우고 싶다. 하여 엔딩크레딧이 모두 끝이 나고 깜깜한 화면이 정지한 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는 요즘 사회에서 엔딩크레딧을 모두 맞이하고 영화관을 떠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항상 마지막이 되곤 하는데 내가 자리를 지키고 나가지 않으면 가끔은 유별나다거나 특이한 사람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나만의 영화에 대한 예의를 여전히 지키고 싶다.



영화인을 꿈꿀 뻔했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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