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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02. 2022

우리 어른이 달라졌어요!

우리 아이가 달라지려면

오늘은 초등학교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고학년을 대상으로 감정 코칭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이번에는 6학년, 그러니까 곧 몇 달 뒤면 중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탈바꿈할 다 큰 아이들을 만나고 왔지요. 으레 6학년이 되면 아이들이 대답도 하지 않고 반응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모시고 삽니다라고들 표현하지요. 3, 4학년 때의 의욕 충만한 열정은 사그라들어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그래서 무기력한 것처럼 보이는 때가 요즘 6학년이 아닐까 합니다.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저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착하다'라는 주문을 걸며 강의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항상 저의 이런 생각을 마구 갉아먹는 일이 발생하지요. 사실 담임선생님도 아닌, 한번 보고 말 선생님인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모둠별로 의견을 이야기해야 하는 수업의 특성상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말장난을 하고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기 마련이지요. 사실 처음 아이들의 이런 태도를 맞닥뜨렸을 때 정말 멘붕 아닌 멘붕이었는데요. 그 와중에 열심히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있어 다행히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지요.



오늘도 언제나 그러하듯이,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저의 목소리에, 친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아이들이 많지 않아 고난을 겪었지요. 인이 박혀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조금 서글펐습니다. 아이들에게 감정이 무엇인지, 감정에는 어떤 욕구가 숨겨져 있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조금 더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의 표정이 밝지 않아 더 아쉬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대를 잡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아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까 하고요.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이 나오더군요. 어른들이 일궈놓은 요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건강하지 못한 방어기제를 이미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보다는 미디어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게 익숙하다 보니 얼굴을 마주하고 발표하는 게 힘들고요. 마스크에 가려져 있는 친구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감정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것도 역시 힘들고요.  그래서 스스로 벽을 치고 자꾸 안으로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통신산업의 발달로 생활은 윤택해졌지만 그에 걸맞은 윤리적인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 형성은 매우 느리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 속에서 아이들은 피해 아닌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어요.




존 버닝햄의 그림책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라는 책에는 말썽꾸러기 에드와르도가 나옵니다. 물건을 걷어차고요, 아주 시끄럽게 굴고요, 동생을 괴롭히고요, 방 정리는 도무지 하지 않는 말썽을 피우는 평범한 아이가 나옵니다. 어른들은 그런 에드와르도에게 세상에서 가장 버릇없고, 시끄럽고, 심술궂고, 뒤죽박죽 엉망인 녀석이라고 손가락질 하지요. 하지만 어느 날 에드와르도가 걷어찬 화분이 흙속에 콕 박힌 광경을 보고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냐며 예쁘다는 말을 건네지요. 그 말에 에드와르도는 정원을 진짜 가꾸기 시작해요. 그리고 꽤 멋있는 솜씨를 발휘합니다.


그림책이니까 가능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요. 아이가 하는 행동에 대한 긍정적인 언어를 건넸을 때, 아이들은 변화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자신을 믿지요. 그런 마음으로 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물론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데에 있어서 긍정의 말만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부정의 자극도 때로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며 이를 악물고 변화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마음을 열고,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세요. 아무것도 아닌 나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야기하면 그 아이는 부정적인 아이가 됩니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긍정의 의미를 부여하면 아이는 긍정의 의미를 좇아 나아가지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착하니까요.



지금 갑자기 핸드폰을 모두 없애고, 게임과 유튜브를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어른들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건강한 방어기제를 마련할 수 있도록요. 느끼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어른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퇴근해서 방 안에서 유튜브만 보고 있으면서, 아이가 아침에 '엄마, 밥 안 먹고 더 잘래요'라는 카톡을 보내는 걸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어른들부터 대화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공감은 어떤 경우에 필요한지 나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먼저 보여주면 됩니다.

어른들이 벽을 깨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어른이 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가 될 겁니다.

에드와르도처럼요.

아이들은 딱 보고 배우는 것만큼 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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