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번 산 고양이』가 하는 충고
사노 요코의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에는 백만 번이나 죽고 다시 태어난 얼룩 고양이가 나온다. 백만 년 산 고양이는 한때는 임금님의 고양이였고, 도둑의 고양이였고, 또 혼자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였고, 어느 소녀의 고양이로도 살았다. 이들은 모두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가 죽음을 맞이할 때, 눈물을 펑펑 흘리고 고이 묻어준다. 하지만 고양이는 이들 모두를 싫어했고, 이들이 고양이 자신에게 한 행동들을 - 바구니에 넣어 다니거나, 함께 빈집을 턴다거나, 하루 종일 안겨있거나,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는 행동-싫어했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하나도 슬프지 않았고, 계속 계속 다시 태어났다. 백만 번 동안이나.
그러던 어느 날 백만 한 번째에는 어느 주인도 없이 홀로 태어났다. 누구의 고양이가 아닌 그냥 얼룩이 있는 도둑 고양이인채로. 얼룩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좋았다. 그래서 만나는 이가 누구든지 간에 자랑을 했다. 자신은 백만 번이나 다시 태어났었다고, 백만 번이나 살아보았다고. 하지만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살면서 진짜 사랑하는 것을 만나지 못했고, 진짜 눈물이 날 만큼 마음을 내어 주는 대상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흰 고양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마음을 내어주며 진짜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사랑하는 흰 고양이가 생을 떠나자 백만 번쯤 눈물을 흘리고는 얼룩 고양이도 영영 세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내이자 남편도 살아간다. 그 누군가가 주체가 되고 나는 그 사람의 일부가 되어 나의 감정과 생각보다는 타인의 잣대에 충족되기 위해 애를 쓰곤 한다. 타인에게 비치는 이미지가 중요해서 누군가의 내가 되는 것을 떨치지 못하고, 허울뿐인 이름 속에서 생을 살곤 한다. 그런 우리에게 사노 요코는 일침을 날린다. 멋지고 화려하고 대단한 삶을 살아도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진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백만 가지 옷을 다 입어 본다 하여도, 그게 내가 원하는 옷이 아니라 누군가만을 위한 겉치장이라면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언제가 끝이 될지 모르고 옷만 갈아입느라 생을 끝낼 수도 없다고 말을 한다.
얼룩 고양이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임금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도둑이, 할머니가, 어린 소녀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다. 백만 번 살아보아도 하나도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감정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흰 고양이 옆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마음 가는 대로 삶을 꾸리기 시작한다. 흰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옆에 있어 주는 게 행복하고 즐겁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사랑한 대상이 사라졌을 때 일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찐한 슬픔도 느낀다. 비로소 얼룩 고양이는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생을 완전히 채우고 살다가 떠나게 된다.
지금 나에게 요구되는 기대 때문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삶을 미루고 있지 않은가? 이생망이라며 다음 생에는 꼭 이걸 해보고 싶다고 그저 막연한 꿈만 꾸고 있지는 않은가? 다들 YES라고 대답하니까 나도 그렇게 답해야겠구나 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에 슬쩍 올라타 있지는 않은가? 내 삶의 주인은 언제나 나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게 인생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찾아내고 해내야 그게 진짜 내 인생이다. 백만 번이나 더 살아도 채워지지 않을 껍데기뿐인 헛헛한 삶 말고, 한 번을 살더라도 내가 내 이름을 걸고 내 생에 어울리는 색깔로 내 삶의 캔버스를 물들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