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로또는 아빠에게 양보할게요

아빠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by 책닮녀

"OO아, 나 이런 거 하나 사고 싶더라."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는 양치질을 하고 있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내민 핸드폰 화면 안에는 겨울 부츠가 보였다. 통굽의 따뜻하고 편안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엄마와 한 집에 살고 있지 않아서(지금 엄마는 저희 집에 잠깐 하룻밤 묵어가는 중입니다. 엄마와 저는 400km 가까이 떨어져 살고 있지요) 속속들이 모르지만 엄마의 부츠는 굽이 높은-그러니까 결혼식용으로 사용하는 힐부츠 같은-스타일만 알고 있었다.


"이런 거 요즘 많이 신지. 어그 부츠는 아닌데 휘뚜루마뚜루 신을 수 있는 거 원하는구나."

엄마는 좋아하는 맛 사탕을 발견한 아이처럼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편해 보여서. 요즘은 다리가 아파서 굽 높은 건 전혀 못 신겠더라고."

"싼 걸 원하는 거야? 비싼 걸 원하는 거야?"

여기서 싼 것은 인터넷에 파는 1,2년 용 신발을 말하고 비싼 것은 백화점에 파는 것으로 가볍고 미끄럼 방지가 되며 5년은 거뜬히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말한다.

"비싼 거."

"그럼 백화점 가야지."

그러고는 엄마는 소파로 돌아갔고, 나는 화장실에서의 용무에 몰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부모님과의 외부 일정이 있는 터라 내 차로 움직였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나는 엄마에게 넌지시 물었다.

"백화점 갈래? 내가 사줄게. 엄마가 말한 신발. 명품 빼고 다 골라."

사실 어제 기차역에서 내리는 엄마를 보며 하얀 운동화가 추워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엄마의 그런 말을 들은 이상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백화점으로 향하자는 내게 엄마는 괜히 피곤한 척 그냥 집으로 가자고 했다.

"왜~ 가자. 나는 돈으로는 안 줘."

하고 농을 던졌다. 엄마는 여전히 집으로 가자고 했다. 백화점에 가면 피곤하다고 지금도 피곤하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3번은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백화점으로 간다~! 콜?"

전 보다 조금 약해진 목소리로 엄마는 말했다. 백화점에 가려면 30분 정도 또 차 타고 나가야 하지 않냐고. 10분 거리에 백화점이 있다는 걸 알고 그러셨던 걸까? 나는 거짓말 조금 보태어 차로 5분이면 도착하고도 남는다고 말했고 엄마는 그제야 마지못해 못 이기는 척, 그럼 가보자고 했다. 8분 뒤 우리는 백화점에 도착했다.



백화점에 주차를 하고 신발 상점이 위치한 곳으로 갔다. 몇몇 곳을 지나쳐 엄마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았다. 딱 엄마가 찾던 통굽 스타일에 부츠 안쪽은 기모처리가 되어 있어 따뜻하고 편안한 신발을 만났다. 갈색 부츠는 어디에나 걸쳐도 무난하게 어울릴 뿐만 아니라 지금 엄마의 드레스 코드에 더없이 어울리는 신발이었다.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지는 엄마는 신나서 어린아이 마냥 수다를 떨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엄마가 원하는 것을 사주는 일, 때때로 선물하는 일에 소홀했는데, 함께 쇼핑하고 선물까지 건네니 딸 도리를 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백화점 쇼핑을 마치고 몇 시간 뒤, 엄마와 아빠는 다시 400km 떨어진 당신들의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아이들 픽업 시간 때문에 엄마와 아빠를 역에 모셔다 드리고는 기차를 타는 것까지는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곧 다가올 민족의 대이동의 행렬에 동참하여 '설' 명절에 부산으로 갈 예정이지만, 하룻밤만 묵고 떠나가는 엄마와 아빠와의 시간이 아쉬웠다. 돌아서려는 나에게 아빠는 봉투를 건넸다. 갑작스럽게 준비한 게 아니라 나에게 주려고 챙겨 온 봉투 같았다. 이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구나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빠께 받은 봉투를 열어보며 신발을 사드린 게 아니라 신발을 얻어 신게 되었네;;;하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이 또한 갚을 날이 있겠지.



어제 소파에 앉아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로또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는 로또는 아빠가 걸리면 좋겠다. 네가 걸리는 것도 좋지만 아빠가 당첨되어서 너희한테 줄게 많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던 아빠의 웃음기 섞인 말이 떠오른다. 진심도 느껴진다. 나도 받은 만큼, 받은 것보다 더, 부모님께도 자식에게도 주는 사랑을 하면 좋겠다.




아빠, 로또는 아빠에게 양보할게요.

아빠 하고 싶은 거 다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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