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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Sep 13. 2021

3년 차 강사로살다 보니

감사함이 피어납니다 - 『감사해요』

-"강사란 무엇일까요?"

-"가르치는 사람이요"

-"네, 맞습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알고 싶어 하는 분들께 알려드리는 일을 하지요. 한 분야에 있어서 살짝 먼저 앞서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좋은 강사는 어떤 점을 갖추어야 할까요?"


수업 첫 시간, 전문가를 양성하는 자격증 강좌라 강사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번째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사전 질문지를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한 수강생의 답변이 내 눈길을 끌었다. 몇 해전, 내가 하고 있는 이 수업을 나도 수강생의 입장에서 들었더랬다. 그때의 나는 무어라고 답했을까? 나의 컴퓨터 폴더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파일 하나를 열어보았다. 


나의 답변은 "시간 개념"이었다. 사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강사라면 시간 약속이 중요하다. 나는 특히 강의를 마치는 시간도 중요하게 여긴다. 강의를 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도 더 생기고, 궁금한 것들도 많아져 시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강의를 들을 때, 마치는 시간부터 일정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데리러 간다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다거나,,,, 그런데 아직 마치지 않은 강의를 먼저 빠져나오게 되면, 예의 없는 수강생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무언가 찝찝했다. 그래서 나는 강의 시작 시간뿐만 아니라 마침 시간까지도 되도록 지키려고 노력한다. 어찌 보면 참 정 없는 강사다. 그런 나에게 수강생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이라는 답변은 참신했다. 내가 가르치는 직업이지만 사실 수강생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 부족한 면모를 그들의 생각으로 채우고 있다.



이제 고작 3년 차 강사.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사실 많은 한계에 부딪힌다. 그림책과 관련된 강의를 하는 나로서는 책한 권 나눔 하기 어려운 이 현실이 가장 힘들다. 오프라인으로 만났다면 나의 진심이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늘 아쉽다. 이번 하반기에는 기관에서는 처음 진행하는 과목을 강의하게 되었다. 협회 강의는 더욱 소수로 진행되고 오프라인으로 이루어지지만, 기관 강의는 10명이라는 다소 많은 인원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또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나를 어렵게 했다. 상반기에 진행했던 강의의 심화과정임에도 새로운 분들의 신청이 많았다. 단방향의 수업이 아닌 수강생들의 이야기가 있어야 진행이 가능한 강의인데,,, 과연 수업 진행이 잘 될 수 있을까? 소수로 진행했던 강의를 다수와 함께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강의 시작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머리가 아팠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왜 새로운 강의를 시작했을까 살짝 후회도 했다. 


드디어 첫 수업.


설레는 맘보다 걱정스러운 맘으로 줌에 접속했다. 10명 정원이 모두 신청하셨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2분은 수업 참여가 어렵다고 하셨다. 소수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라 더 이상 추가 접수는 받지 않았다. 사실 도서관 강의는 무료이다 보니 신청만 하고 참여를 하지 않는 분들도 많다. 또 참여한다고 해도 비디오와 오디오를 모두 끄고 듣기만 하는 분들도 꽤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8분 모두 접속하셨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화면을 켜고!

이렇게 모두 찾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어떤 분들일까 궁금했는데, 자기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대가 되었다.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엄마들. 자격증을 통해 전문가를 배출하는 과정임을 모르고 '창의'와 '책놀이'에 이끌려 오셨다는 분도 있고, '책놀이'하러 왔는데 강사라는 일에 대해 알게 된다는 분들도 계셨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적극적이고 진심으로 참여하는 수강생들을 보며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수강생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하는 강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생각을 나누어주는 수강생분들께 감사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지레 겁먹어 도망가거나, 섣불리 탓하거나, 애써 외면하지 말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달려 나가야겠다.




그날 저녁, 그림책 <감사해요>를 꺼내 들었다. 그림책 속에는 감사할 것들 투성이다. 엄마, 아빠께도 감사하고 나 스스로에게도 감사하고 무엇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다. 책의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에게 감사일기를 쓰도록 했더니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힘을 전하고 싶어 그림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감사란 작은 것부터 하는 거래요.
 감사란 하는 것이 아니라 찾는 거래요.
우리 주변에서부터 감사한 일을 찾아보아요.




내 수업을 들으러 오는 분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열리면 수강생이 있고 강사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니다. 그 많고 많은 수업 중에서 나의 수업을 선택해준 수강생들께 감사하다. 온라인 수업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힘들 수 있는데도 2시간 내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 주어서, 마음을 열어주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아주 작은 것들도 찬찬히 살피고 곱씹어 생각하면 감사할 일들이 많이 있다. 감사란 하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 말처럼, 작은 것들부터 찾아보자.


자연은 쉬지 않고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몸소 보여주어 감사하고,

오늘 아침 아무 일 없이 눈뜨고 일어나 등교와 출근을 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이불속 유혹을 참아내고 새벽 기상에 성공한 나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운동으로 몸을 돌보아 준 나에게 감사하다.




3년 차 강사로 살다 보니,

이제야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여전히 두렵고, 걱정스러운 맘은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불안했던 마음은 작고 작아져 마음속 구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오프라인도 좋지만, 장소와 시간의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으로라도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그들의 생각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가진 그 무엇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고 이끌어 주고 싶다.

나의 강의를 들으러 온 그들의 마음에 온기가 전해지도록 진심을 다해야겠다. 귀 기울여주고 끄덕여주고 마음을 열고 공감해 주어야겠다. 좋은 강사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리라 또 다짐해본다.

오늘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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