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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Jul 07. 2021

둘만의 은밀하고도 달콤한 비밀

엄마한텐 비밀이야-『비밀이야』

“엄마~ 빨리빨리~~!”

학원에서 받아온 막대사탕을 먹겠다고 재촉하는 아이들이다.

“난 딸기!”

첫째가 먼저 사탕을 집었다.

“나도 딸기 맛 먹고 싶은데~”

둘째는 울상이 되었다.

“내가 받아온 거잖아~ 내가 딸기 먹을 거야”

첫째의 똑 부러지는 반박에, 둘째는 하는 수없이 오렌지 맛을 선택했다.

첫째는 새침한 표정으로 사탕을 쏙 입에 넣었고, 둘째는 달콤한 사탕을 입에 넣고도 시무룩했다. 그리곤 속상한 맘에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둘 사이에 차가운 기류가 흘렀지만 싸웠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흔한 남매이기에, 뭐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잠깐 집안일을 하다 보니 집이 너무 조용했다. 고요함은 사건 사고의 징후라는 엄마의 직감으로 둘째의 방문을 열었다.

‘어? 어디 갔지??’

다시 첫째의 방으로 가서 방문을 열려는데,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한테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응! 응! 절대 말 안 해”

좀 전에 삐져있던 모습과는 다르게 들뜬 목소리였다.

뭐가 비밀이라는 거지? 문을 열고 싶었지만 조금 더 참고 귀를 기울였다. 첫째가 말을 이었다.

“하나 둘 셋 하면 바꾸는 거다. 하나, 둘, 셋”

장난감을 바꾸기로 한 건가? 어리둥절해하던 나는 다음 대화를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우와 오렌지도 맛있네~~~”

“히히히히히. 딸기 맛있다~~”

그 순간 내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 외쳤다.

“으~~ 더럽게 사탕을 왜 바꿔 먹어!!!”

아이들은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비밀이었는데!! 히히히 히히히”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먹던 사탕을 바꿔 물고는 숨이 넘어갈 듯 웃는 남매를 보며 마음속으로 물었다.    


‘좀 전에 너희 싸운 거 맞지?’    



박현주 작가의 <비밀이야> 작품 속에도 우리 집 남매와 같은 현실 남매가 등장한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누나는 휴대폰 게임을 하고 동생은 텔레비전에 빠져있다. 둘은 각기 다른 곳을 보며 대화를 한다.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좋겠다”

동생의 말에 누나가 딱 잘라 대답한다.

“엄마가 안 된댔어, 똥 싸고, 털 빠지고, 짖는다고.”

여전히 각자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동생은 강아지 대신 늑대나 하마, 캥거루 그것도 아니면 기린은 어떤지 묻는다. 누나의 대답은 항상 ‘안 돼’지만 동생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럼 누나, 공룡은 어때!”

“이 바보야! 공룡은 멸종됐잖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엉뚱한 질문에 누나는 동생 머리를 쾅 내리친다. 동생은 자신의 상상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속상한데, 누나가 콩 쥐어박는 바람에 서러워져 눈물을 쏟았다. 그런 동생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든 누나는 슬그머니 거북이를 키우자고 이야기한다. 거북이는 조용해서 아래층 할머니도 좋아하실 거라며 거북이와 함께 흙 속에 파묻혀 사는 상상을 한다. 상상의 세계를 떠난 동생은 기분이 좋아 코끼리를 키우며 물놀이를 하자고 하고, 치타 타고 학교 가는 꿈도 꿈꾼다. 또 양털에 쌓여 포근히 잠든 상상을 하며 나란히 누워 있다. 그런데 거북이랑 코끼리랑 치타랑 양이랑 사는 걸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할까 ’ 묻는 동생에게 누나가 말한다.    


“비밀로 해야지.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시끌벅적 요란하던 핸드폰과 텔레비전은 조용히 잠들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던 남매가 어느새 같은 곳을 보며 같은 자세로 누웠다. 그리곤 ‘함께’ 상상하며 웃고 있다.    


그림책을 보며 문득 나의 언니가 생각이 났다. 우린 각자 결혼해 아이들을 키우느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언니와의 추억은 옅어지지 않고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3살 터울인 언니는 늘 엄마처럼 굴었다. 마치 어른이 아이 대하듯 하는 모습이 탐탁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나에게 언니는 ‘작은 엄마’라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준비물을 빠트린 날에 언니 교실로 찾아가면 어떻게든 해결해 주었고, 우연히 언니를 만나면 용돈으로 맛있는 간식을 사주기도 했다. 그런 언니가 있어서 나는 참 행복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어려울 때, 언니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내 편을 얻은 듯 든든하다. 때로는 엄마가 속상할까 봐 차마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우리는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도 한다. 그림책 속 남매처럼 나도 언니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웃으면 좋겠다. 그리고 티격태격하다가도 먹던 사탕도 나눠먹는 우리 집 남매도 우리처럼 함께 웃으며 커가면 좋겠다.     




하루는 내가 우리 집 남매의 등굣길을 배웅하고 있었다.

“누나 손 꼭 잡고, 너는 동생 잘 데리고 가~!”

나의 당부에 큰 아이는 괜히 트집을 잡았다.

“꼭 손을 잡아야 해??”

“응. 꼭 잡아야 해!”

단호한 나의 대답에 다시 묻는다.

“왜??”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너희 둘이 손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아니? 그게 내 행복이야. 내 행복을 방해하지 마~”

남매는 눈을 맞추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교문을 들어서며 둘은 손을 안 잡는 듯하다가, 귓속말로 쑥덕쑥덕 비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 나를 보고는 손을 꼭 잡았다.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때론 눈을 흘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지만, 둘이라서 좋다.

그 둘이 함께 가는 걸 보면 나는 참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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