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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Oct 05. 2021

나의 성장판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키작녀에서 꺽다리로

성장판. 뼈가 자라는 장소.

팔다리 뼈에서 길이 성장이 일어나는 부분을 말한다. 대개 뼈의 양쪽 끝에 있으며, 뼈와 뼈 사이에 연골판이 끼어 있는 형태로 있다. 사춘기쯤 되면 성장판도 모두 뼈로 바뀌게 되면서 길이 성장이 끝나게 된다.


성장이라는 건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다. 

"엄마는 다 컸으니 더 이상 클 수 없어. 너는 좋은 것 많이 먹고 지금 커야 해. 사람마다 성장판이라는 걸 가지고 있는데, 일정 시기가 되면 닫혀버려. 지금 운동도 많이 하고 영양분도 많이 공급해주어야 성장할 수 있는 거야." 쉬지도 않고 잔소리를 해댔었다.


마흔을 앞둔, 아이를 둘 낳은, 이제는 그럭저럭 살아온 세월이 쌓인 사람으로 성장은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 나의 키는 여기 까지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래, 딱 그거였다. 내가 생각한 성장은 물리적인 키에만 해당된다는 것.



얼마 전 블로그 이웃님의 자기성장계획서 쓰기라는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성장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의 성장 계획서라니 키작녀인 나는 왠지 모르게 이끌렸다. 한 달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긍정 에너지가 팍팍 넘치는 프로젝트였다. 줌으로 모이는 날짜에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서 잠깐 망설이다 진행자께 양해를 구하고 신청했다. 비록 물리적 키는 늘 앞번호였지만, 마음의 키는 줄 세우기에서 뒷자리를 얻고 싶었으니까.


자기성장계획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계획서를 쓰는 요령을 알려주는 미팅. 짧은 30분간의 미팅 속에서 나는 선물을 받았다.


 현재는 present, 선물과도 같은 것.
행복은 현재의 내 상태에 만족하는 것.


영어 단어 present는 현재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을 모두 갖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자체가 선물과도 같다는 것. 내가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펼칠 수 있고, 그리고 가족과의 일상을 보낼 수 있음이 모두 선물이다. 감사하고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당연하기에 잊고 지냈던 사실을 콕 집어 주었다. 그리고 그런 현재의 내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도.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어 괴로워하고 원망하고 아쉬워하기보다는,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기보다는,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이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작은 만족 포인트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성장 계획서를 쓰며 다시 펼쳐보고 싶은 그림책이 있었다. 

바로 김희경 글, 염혜원 그림의 『나는 자라요』


그림책의 꼬마는 엄마 품에 푹 안길 만큼 아주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매 순간 자라난다. 밥을 입안에서 씹는 순간이나 물을 삼키는 순간에도, 엄마한테 혼나서 눈물이 쏟아질 때에도, 동생을 껴안을 때에도 자라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엄마를 품에 안아 줄 만큼 자란다.


처음에는 아이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구나, 그래 아이들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쑥쑥 자라고 있지, 하나하나 경험하고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며 자라나고 있지, 생각했다. 책을 펼치면 펼칠수록,  비단 어린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아이가 나를 안아줄 때 엄마로서 나는 자라고 있고, 남편과 싸우고 싶을 때 한번 즈음은 하고픈 말을 꿀꺽 삼키며 나는 자라고 있고, 늙어가는 부모님을 옆을 지키며 여전히 자라고 있다. 비록 물리적인 키는 작은 키에 멈추었지만, 나의 뇌는 멈추지 않고 바쁘게 제 할 일을 하고 있으며 나의 가슴은 식지 않고 여전히 뜨겁게 뛰고 있다.  





10월 한 달, 자기 성장 계획서를 작성하며 꿈꿔본다.

계획대로 다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보다 손가락 한마디는 더 자랐을 테니, 

그렇게 쌓인 마음속 키가 언제 가는 나를 꺽다리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나의 인생 성장판은 아직 닫히지 않았기에

충분한 영양과 운동을 공급하며 쑥쑥 자라날 나를 그려본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런 글을 쓰며,

오늘도 나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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