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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04. 2021

결혼 10년 차, 엄마의 여섯 번째 방문.

『너를 기다릴게』김경애

2시 50분, 수서역 도착.

엄마가 온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성인이 되어 수도권으로 홀로 떠나왔다. 학창 시절부터 서울로 시집갈 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엄마가 싫어서, 집이 싫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 내가 도전하고 싶었던 의 기회는 늘 수도권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만큼은 하고 싶은 것, 맘껏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꿈 많은 소녀였던 나는 그렇게 늘 시집을 멀리 갈 거라며 스스로 엄마에게 정을 뗐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나는 집을 떠나와 일자리를 구하고, 여기서 사랑하는 반쪽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엄마의 손길이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30분 남짓한 거리에 시댁이 있어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언제나 도움을 주시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급한일이' 있을 때다. 육아가 처음이라 서툴고 당황스러운 것 투성일 때, 아침 일찍 출근하는 신랑이 떠난 후 말 못 하는 갓난아이와의 하루가 조금은 우울해질 때, 그리 급하지는 않지만 누가 좀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럴 때. 친정 엄마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참 서운하게도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딱 5번 우리 집에 왔었나 보다.


처음은 첫 아이를 낳고 신랑이 갑작스레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서 엄마가 잠시 었다. 그리고 큰 아이의 돌잔치, 둘째 아이의 출산, 둘째 아이의 세례식, 언니네 가족과 함께 놀러 왔던 다섯 번째 방문. 그리고 여섯 번째로 엄마가 우리 집에 왔다. 큰 아이의 첫 영성체 예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다. 못오게 눈치주는 사람도 없는데 내집이 더 편하다며, 딸 집에 웬만해서 오지 않는 엄마가 방문을 하셨다. 천주교 신자에게 첫 영성체는 인생에 단 한번뿐인 엄청난 큰 예식이다. 손녀딸의 첫 영성체를 직접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에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서울로 오셨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엄마가 집에 온다니 참 좋았다. 아이들도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나 할머니가 오신다며 어찌나 좋아하는지, 나의 엄마를 좋아해 주니 고맙고 뻤다. 평소에 엄마께 생일 상 한번 차려드리는 게 소원인 나는 엄마를 위해 좋아하는 나물 반찬을 준비해야지 했는데, 애 둘이라는 핑계로,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다는 변명으로, 외식과 간단한 밥상을 대접해 드렸다. 그렇게 예식을 치르고 엄마는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를 다시 기차역으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엄마는 내 집에 몇 번이나 더 오실까?'

'앞으로 엄마 얼굴을 직접 마주 하는 날이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설, 추석 일 년에 고작 2번, 어쩌다 집안 행사나 일이 있어서 더 가게 되면 3번.

앞으로 30년을 더 사신다고 가정해도 100번이 채 안되었다.

엄마께 밥을 차려드릴, 나의 마음을 표현할 소중한 기회를 그냥 흐지부지 보내버린 듯하여 후회가 밀려왔다.

더 잘해드릴 걸. 더 잘해드릴 그날까지 기다려 주실까...




그림책 <너를 기다릴게>가 떠올랐다. 그림책에서 엄마는 아이를 기다려준다. 진열대 앞에서 장난감을 고를 때, 혼자 무언가를 할 때, 진심을 담은 눈빛을 보내며 기다려 준다. 부모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식이 태어나기를, 응애응애 소리 내어 울어주기를, 혼자 뒤집고, 혼자 일어나 걷기를, 그리고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으로 달려 나가기를 묵묵히 지켜봐 주고 기다려준다. 지루할 법도 한데, 지칠 만도 한데, 온 우주의 기운을 담은 무언의 응원을 끊임없이 보낸다.


그림책 처럼 어릴적 나를 변함없이 기다려 주셨듯이

엄마가 이번에도 기다려 주실까?

앞으로 얼마나 기다려 주실까?

후회와 불안이 밀려오지만 지나간 시간보다 앞으로 마주할 기회에 집중을 해야지.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은 엄마에게 마음을 보내본다.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조금만 더 오랫동안 저를 바라봐주고 기다려주세요.
엄마를 더 웃게 해드리고 싶어요.
막내딸이 꼭 그렇게 해드릴게요.
저를 기다려주세요.


결혼 10년 차, 아들집도 아니고 딸 집에 고작 6번 방문이라니.

언제 또 다시 우리 집에 방문하실지 기약이 없지만,

그때는 반드시 엄마가 좋아하는 나물 반찬으로 8첩 반상을 꼭 차려드리리라.

다짐. 또 다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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