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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25. 2021

너 왜 울어? 얘가 사람 돌게 만드네

당신은 기린과 자칼 중 어느 쪽에 속하십니까?

"엄마, 나 빵 먹고 싶어."

교정을 하는 아이는 전 날 치과를 다녀온 통에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부드러운 메뉴를 준비해서 식사를 준비해주었지만, 학교에서의 급식은 그럴 수 없기에 밥과 국만 조금 먹다 말았단다. 배고프다는 아이의 말만큼 민감한 게 있을까. 태권도로 떠나는 아이에게 사르르 녹는 초코머핀을 사놓겠노라 약속하며 헤어졌다. 걸어 다니는 인간 가방걸이가 되어 두 아이의 책가방, 신발 가방, 내 가방 도합 5개를 이쪽저쪽 걸고는 빵집으로 향했다. 머핀을 포함한 빵을 사고 커피 한잔을 시켜서는 낑낑대며 먼길을 돌아 집으로 왔다. 식탁에 앉아 커피 한잔과 빵 한쪽을 먹으며 그제야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태권도를 마친 아이들이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이들의 소리에 먹던 커피를 그대로 두고는 뛰어나갔다. 아이들의 겉옷을 받아주고, 땀을 닦아주고, 둘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큰 아이는 식탁 위 빵으로 다가갔다. 초콜릿이 콕콕 박힌 머핀을 보자마자 반가운 맘에 팔을 쭉 뻗어 빵을 집어 들었다.

그때였다.

"탁 주르륵"


큰 아이의 팔을 맞고 커피 컵이 쏟아졌다. 꽤 많이 남아있던 양은 그대로 흘러내렸다. 커피 옆에 놓아둔 핸드폰까지 흠뻑 젖은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어떤 이성적인 생각도 할 겨를도 없이.


"OO아. 조심 좀 하지! 이게 몇 번째야 도대체!"


큰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실수해서 당황했고, 엄마에게 혼나는 게 서러워 보였다.

"너 어제도 물 쏟고, 미역국 쏟고 10살이 되어서는 이게 몇 번째냐고."

속으로 아차, 이렇게 화내지 말걸 싶었다. 하지만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은 이미 아이의 가슴에 상처를 냈다. 분명 실수였다. 30살도 40살도 할 수 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 어쩌면 커피 뚜껑을 닫아 놓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는데 나이까지 운운하며 비꼬았다. 지금 한 실수만 조심해달라고 부탁의 언어로 이야기했으면 될 걸 옛날 일까지 끄집어내어 쏘아 부쳤다. 이제 겨우 한 숨 돌리는 중이었는데 흘린 커피를 닦을 생각에 화가 나서, 새로 산 핸드폰에 혹시 커피가 들어가 고장 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나의 감정을 아이에게 터뜨려버렸다. 그렁그렁하던 눈물은 이내 뺨을 타고 흘렀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너 왜 울어? 얘가 사람 돌게 만드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폭력대화 좀 배운 내가 그래서는 안되지라며 겨우겨우 이성을 부여잡았다. '자칼에서 기린으로 돌아와야 해! 얼른!' 나에게 주문을 걸고는 말을 삼켰다. 아이에게 울음을 그치고 오라고 했다.


 잠시 뒤, 흐르던 커피를 모두 수습하고 상황이 조금 진정되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는데 딸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미안해. 앞으로는 조심할게"

먼저 말 해준 딸아이가 고맙고 기특했다. 이것저것 재느라 어떻게 말해야 더 이성적일까 고민하느라 쭈뼛쭈뼛 기회만 보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 엄마도 큰 소리로 화내서 미안해. 엄마는 네가 커피를 쏟았을 때, 짜증이 났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빵을 사 와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또다시 일거리가 생긴 기분이었어. 엄마는 조금 쉬고 싶었거든. 다음부터는 주의를 기울여주면 좋겠어."





자녀교육 그림책으로 유명한 『너 왜 울어?』를 보며 가슴이 뜨끔해진다. 자녀교육은 이렇게 해야 한다며 설교하기보다는 나는 어떤 양육자인지 스스로 돌아보게끔 하는 사실적인 글들과 그림. 과장된 듯 보이지만 나에게도 너에게도 있는 모습들. 특히 '얘가 사람 돌게 만드네'라는 장면을 보며 얼굴이 붉어진다. 나의 잣대에서 판단하고, 아이의 기분과 욕구는 무시한 언어들로 아이를 더 작은 감옥에 가둔 건 아닐까. 표지의 손가락처럼 빨갛고 뾰족한 언어들로 아이를 콕콕 지르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비폭력대화되뇌인다.

비폭력대화

마셜 B 로젠버그가 창안한 대화법
평가와 판단을 배제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소통방법

관찰(observations):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행동을 관찰한다.
느낌(feelings): 그 관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다.
욕구(needs): 그러한 느낌을 일으키는 욕구, 가치관, 원하는 것을 찾아낸다.
부탁(requests):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한다.


처음 비폭력대화를 마주했을 때 '이게 가능해?'라는 반감을 가졌다. 현실에서 과연 적용이 가능할까, 무늬만 있는 이론이 아닐까.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불신했었다. 책놀이 강의 커리큘럼에서 만나 낯설기만 했던 이론을 이제는 내가 강사가 되어 전달해야하니 더 연구를 했다. 그리고 실생활에 적용을 해보았다. 불가능할 것 같은 대화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럴듯하게 흘러갔다. 비폭력대화를 하며 아이가 짜증 내거나 투정 부릴 때 기분이 어떤지, 그 기분의 욕구는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할수록 나의 욕구도 분명해졌다. 서로가 언어를 통해 기분과 욕구를 주고받게 되니 부탁의 언어로 대화가 가능했다.


물론, 나도 사람이다 보니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앞서 아이가 커피를 쏟은 순간도 자동적인 반응이 나왔다. 비폭력대화라는 게 실생활에 바로바로 적용하기는 사실 어렵다.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매번 사실만 바라볼 수는 없지 않은가?인간이 감정의 동물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고 난 뒤에라도, 우리의 소통에 어떠한 문제점이 있었는지, 타인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원했는지 되짚어보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런 시간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한 대화가 가능해지리라.


비폭력대화에는 기린의 언어 자칼의 언어가 등장한다. 기린은 육지 동물 중에서 가장 큰 심장을 가졌다. 목이 길고 키가 커서 멀리 잘 내다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큰 심장으로 타인을 감싸고, 긴 목과 키로 주변을 살피고 관찰한다. 사랑과 공감의 상징이다.

반면 자칼은 키가 작아 멀리 내다볼 수 없다. 상대방을 만나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물어뜯는다. 으르렁거리고 할퀴어 상처를 낸다. 폭력의 대화를 상징한다.


상대방을 평가하고, 내 멋대로 해석하고, 내 느낌만 중요시해서 강요하는 자칼의 언어를 버리고 ,

사실을 관찰하고, 느낌을 밝히고, 욕구를 찾고, 부탁의 언어로 기린의 대화를 이어가기를.




당신은 기린과 자칼 중 어느 쪽에 속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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