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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y 07. 2024

나의 다정한 할아버지께

당신의 사랑을 먹고 자란 외손녀가

할아버지, 처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써보네요. 



저는 어릴 적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건 극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요, 음 제가 느끼기는 그랬어요. 특히 부모님께 무한한 지지를 받았죠. 그것도 엄마로부터요. 공부는 그다지 잘하지 못했지만 엄마는 제게 늘 똑소리 난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말 덕분에 저는 더 똑소리 나는 아이가 되고 싶었어요. 걱정 많고 불안이 가득 찬 제게 엄마의 칭찬과 손길과 미소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원동력이었어요.



엄마는 저를 인생의 100프로라고 표현했어요. 언니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그래서 언니는 때때로 섭섭해했지만, 하지만 진짜 엄마 인생의 100프로는 아니었지만, 그 말은 저를 팔딱팔딱 뛰게 했어요. 잘 살고 싶다는 마음,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 단단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했어요. 덕분에 저는 도전도 꽤 잘하고요, 꾸준히 할 줄도 알고요, 또 가진 것에 만족할 줄도 알고요, 꿈꿀 줄도 알고,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만끽할 줄도 안답니다. 



평생 제대로 된 인사 한번 없던 외손녀가 갑작스럽게 이렇게 편지를 보내니 무슨 일인가 싶으시죠? 인생의 걸음마를 떼게 해 준 고마운 존재에게 편지를 쓰라는 미션에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 고민고민하다가 할아버지가 생각났어요. 한 번도 제 입 밖으로 불러본 적 없는 나의 할아버지. 엄마의 시골집에 가서 제사상 위에 붙여진 사진 속에서 마주 했던 엄마를 많이 닮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엄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니, 지금도 많이 해요. 언제나 할아버지가 엄마 편이셨다고요. 장난꾸러기 큰 외삼촌과 투닥투닥 다툼이 일어나면 언제나 엄마의 편을 들어주었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고요. 공주처럼 온 사랑을 듬뿍 받고 살던 엄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죠. 그때부터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온갖 풍파를 맞이할 때마다, 심지어 환갑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할아버지가 주신 사랑을 꺼내 먹으며 소녀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고 있어요. 



그런 사랑받고 자란 엄마가 뿌려주는 두터운 사랑이 있었기에 저는 한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때로 넘어지고 미끄러져도 다시 일어나 차근차근 걸어볼 힘이 쌓였죠. 그러니 제게 걸음마를 가르쳐 준 건 어쩌면 할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마주친다면 그땐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엄마가 저에게 주었던 사랑을 다시 돌려드릴게요. 저의 어깨를 빌려드릴 테니 마음껏 짚고 오른발, 왼발 함께 걸어요. 예전에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날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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