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유난히 힘든 그런 날, 나만의 마음 관리법

feat. 칵테일의 사랑

by 책닮녀

어릴 적 피아노 실력과는 상관없이 악보 모으기가 한창 유행했다. 당시에 인기가 많은 곡들은 문구점이나 레코드점에 가도 구하기가 어려웠고, 다른 동네로 원정을 가서 어렵게 구해오곤 했다. 수많은 피스들 중에서 유난히 나의 손을 많이 탔던 곡은 '마로니에'의 <칵테일의 사랑>. 피아노로 연주하기에는 무척 어려웠지만, 그냥 가사가 좋았다.

1994년 발매한 곡으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감성의 싹을 틔우게 한 그 곡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감성 나무의 열매를 무르익게 하는 노래다. 마음이 유난히 힘든 그런 날이면 여전히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겨있는 이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가사처럼 나를 돌본다.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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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는 자신의 저서 『걷는 사람』에서 이렇게 말한다.

“답이 없을 때마다 나는 그저 걸었다. 생각이 똑같은 길을 맴돌 때는 두 다리로 직접 걸어 나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처럼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자연의 공기와 변화를 느끼며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답이 없을 때는 무작정 걷는다. 따로 걸을 시간이 없던 때에는 퇴근길에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밤거리를 거닐곤 했다. 지금도 가슴이 답답할 땐 가까운 지름길보다는 먼 길로 빙 돌아가며 지친 나를 돌본다. 그렇게 걷다 보면 스쳐 지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보이고,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장면들이, 구석에 갇혀 문을 걸어 잠근 나를 밖으로 불러내곤 한다. 내 등을 포근히 감싸주는 햇살, 콧등을 간질이는 바람, 뇌를 깨우는 차가운 공기들을 느끼며 걷다 보면, 저 멀리 어딘가 답이 있을 것 같은 희미한 희망이 피어나곤 하니까.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밥 먹자~”

“오늘은 빨리 먹자”

“얼른 먹고 놀면 되잖아”

“이제 장난 그만!”

“밥 먹으라고!!!!!!”


밥 하나 먹이는 것도 진심을 다해야 하는 육아다. 육아라는 건, 행복한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 우리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한 편의 소설 같은 것, 하지만, 소설에는 언제나 갈등과 위기가 있듯, 육아도 언제나 예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치도록 사납고 미치도록 외로운 순간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엄마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럴 때마다 나는 향기를 머금은 청량한 맥주 한 캔을 따고, 입안 가득 머금어 본다. 비록 향기로운 칵테일은 아니지만 목구멍을 톡 쏘는 맥주를 꿀꺽 삼키며 힘들고 지친 나의 마음을 콕콕 콕콕 두드려준다. 토닥토닥하고. 살짝 오른 취기에, 오늘 하루 엄마라서 외로웠던 순간들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도록.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침대에 누워 한 편의 시를 읽어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평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부족하진 않았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나는 ‘전시회’라는 건 무엇인지, TV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20대에는 돈을 버느라 값비싼 문화생활은 사치라 생각했고, 어쩌다 엄마가 되어버린 30대에는 시간이 없어서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림책을 만나고 매일 나의 침대를, 나의 소파를, 나의 식탁을 전시회장으로 만든다. 그림책이야말로 가방에 쏘옥 넣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멋진 예술 작품이 아닐까? 유난히 뾰족해지는 날이면 내가 있는 공간 어디에서든 그림책 한 권 펼쳐 든다. 나만의 전시회장에서 만나는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그림은 나를 무르익게 한다. 대추 한 알처럼 붉고 둥글게.



♪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질 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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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편지지가 나올 때마다 문구점을 지나칠 수 없는, 편지 쓰기 좋아하는 소녀였다. 나를 스쳐간 누구에게든 글로 마음을 전하기를 즐겼고, 신랑과의 연애 때에도 답장 한 번 없는 편지를 그렇게도 썼었다. 편지지가 없으면 쪽지를 고이 접어 이야기를 전하고, 작은 포스트잇에 나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게 끄적이는 게 좋은 나는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오면, 나의 마음을 글로 써본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뭐라고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져서, 하얀 바탕 위에 까맣게 깜박거리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밤새도록 저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끄집어내 본다. 위로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 마음을 쑥스럽지만 용기 내어 꺼낸다. 바로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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