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의 두 얼굴

엄마가 사라졌다.

by 책닮녀

더위가 한풀 꺾여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던 7살의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옆에 있어야 할 엄마는 보이지 않았고, 밤이 되어도 어둠과 적막감만이 집으로 찾아올 뿐,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 날 저녁, 아빠와 엄마는 크게 다투셨다. 두 분이 무슨 일로 언성을 높이셨는지 나는 잘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땐 너무 어렸으니까. 단지, 이 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죽고 못 사는 부부는 아니지만,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세상 어디에도 없던 착한 엄마가 집을 비운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아빠 밑에서 막내딸로 자란 나는 엄마의 완벽한 껌딱지였다. 다혈질인 아빠는 화가 나면 큰 소리를 내시곤 했는데, 그런 아빠가 두려워 엄마의 뒤에 숨어 있기 일쑤였다. 겁 많은 어린 동생 때문에 3살 터울의 언니는 어쩔 수 없이 아빠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보다는 아빠와 유대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었지만, 언니 역시 엄마가 없는 시간이 힘들었을 테다. 하지만, 언니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며칠 째 부재중인 엄마 때문에, 두려움에 울먹이는 나를 달래주었다. 작은 엄마가 되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이 되어 해가 낮게 깔리자, 언니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 엄마가 없는 집 앞 골목길은 어찌나 휑하고 을씨년스러운지.. 무서운 마음에 언니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낮은 담벼락이 줄지어 이어진 골목길을 지나 맞은편 골목으로 길을 건넜다. 우리의 발길이 멈춘 곳에는 공중전화가 있었다. 언니는 주머니에서 네모난 종이쪽지를 꺼냈다. 까맣게 쓰인 숫자들, 손가락에 힘을 주어 꾹꾹 누르곤, 차분히 기다렸다.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연결음이 울리고 잠시 후 들려온 목소리는...

엄마였다.


“엄마?.....엄마....으앙~~”

이모에게 연락해서 알아낸 엄마의 연락처, 언니도 엄마가 많이도 그리웠던 게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며칠 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골목길에 나의 울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언니는 울면 엄마가 영영 오지 않을 거라며, 온 동네방네 소문나면 아빠에게 혼날 거라며 애써 나를 달랬다. 힘겹게 울음을 그치고 엄마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엄마, 내일 갈게. 울지 말고 언니 말 잘 듣고 있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내일 온다는 한마디는 지금도 가슴 한편에 고이 남아있다. 나의 전부인 엄마가 내일 돌아온다니! 사실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나의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희망이 피어났다.

그렇게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골목길.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가로등이 노랗게 수를 놓고 있었다. 분명 아까 걸어 나올 때는 무거운 슬픔의 공기가 잔뜩 깔려 한발 한발 옮기기도 힘들었는데,,,, 질퍽질퍽한 돌멩이들이 나의 발바닥을 마구 긁어 상처를 내는 느낌이었는데,,,, 이리도 다를 수가! 집으로 돌아가는 이 골목길은 여름날의 시원한 저녁 바람처럼 청량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부작, 사부작 돌멩이 밟는 소리가 경쾌한 골목길의 BGM이 되어주었다.


내일은 이 골목길을 사랑하는 엄마와 손잡고 걸을 수 있을까?

그땐 어떤 얼굴의 골목길을 마주할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