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하라고! 영리하게 하란 말이야. 빨리 달리기만 하면 뭐하냐고. 힘 있게 못해? 그럴 거면 수비해. 공격은 왜 하는 거야?"
정해진 포지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공격수로 많은 경기에 임하고 있는 아들은 지난 시간 호되게 혼났다. 대회를 앞두고 날카로워진 선생님은 아이에게 뾰족한 말로 상처를 내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당하기도 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평가를 듣기도 하고, 큰 소리로 호통치는 바람에 정작 무엇 때문에 혼나는지 모르는 두려움과 아픔만 남은 시간이었다.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고, 배우다 보면 지적도 받는 거라지만, 부모 된 입장에서는 맘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내 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들은 누가 봐도 참 열심히 하는 아이다. 거짓말이나 꾀를 부리지 않는 정직한 스타일.
축구는 좋지만 선생님이 무서워 훈련 시간이 두려워질 때마다 늘 배가 아프다고 한다. 나름대로 꾀병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극심한 긴장으로 진짜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면 아이는 180도 바뀐다.
"OO아, 오늘 컨디션 괜찮아?"
"네!!!!"
배가 아프다며 소리도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던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낯선 가면이 아이 앞에 나선다. 수업 2시간 내내 장난치는 법이 없다. 심지어 선생님이 'OO 이는 장난을 전혀 안쳐요? 웃긴 웃나요?'하고 물어본 적도 있다. 집에만 오면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며 춤을 추고 거실을 활보하는 아이인데, 장난치느라 땀을 한 바가지 흘리는 평범한 1학년 남자아이인데 말이다. 칭찬을 한 번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 인정을 한 번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 아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최선을 다해 달린다. 연습이 끝나면 설치해 놓은 장애물을 치우라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쏜살같이 달려가 정리한다. 잠깐 자리를 비울 때면 '장난치지 말고 스트레칭하고 있어'라고 꼭 말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그 말을 듣고도 8살 스럽게 처음에만 스트레칭할 뿐 장난치기 바쁘다. 아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고 끝까지 지키는 성실한 아이다. 잘하지는 못해도 실력은 부족할지라도 정말 열심히 하는 아이다. 때로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그런 아이에게 꼭 그렇게 말해야 할까? 잘하고 싶어서 배우러 간 학원인데,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부모로서 두 시간 꽉 채워 값진 땀을 흘린 아들이 그런 야단을 듣고 있으니 속이 문드러지고 타들어갔다. 물론 취미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선수를 키우고, 경쟁과 시합 속에서 승리와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곳이 대표팀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 꼭 그렇게 잘해야 한다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고 시퍼런 눈길로 마구 상처를 내야 했을까? 8살 아이에게 비교와 신랄한 평가는 그저 자존감을 무너뜨릴 뿐, '나는 소질이 없어'하고 잔뜩 웅크린 몸으로 동굴 속으로 들어가라고 등 떠미는 일일 뿐, 그런 피드백은 어떤 효과도 불러오지 못하는 걸.
우리는 흔히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게 맞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결과만을 향해서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뭐든지 꼭 잘해야 할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걸까? 어릴 적 한 가지 목표만 쫓아 달려 나가던 때에는 나도 결과가 중요했다. 열심히 했어도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 돼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중도 포기자, 실패자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어른이 되어가며 조금씩 배우고 느끼고 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열심히만 해도 된다고.
열심히 하는 아이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열심히 사는 어른의 오늘과 내일은 달라진다. 열심히 살다 보면, 허투루 살지 않으면, 차곡차곡 쌓여서 언젠가는 좋은 결과도 따라온다. 그 결과라는 게 어느 누구에게나 보이는 엄청난 성과가 될 수도 있고, 나에게만 보이지만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내 마음을 꽉 채우는 보람과 행복이 될 수도 있다. 단지 그 차이가 있을 뿐. 편협한 세상의 고정관념 때문에 아들이 상처 받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항상 열심히 하는 참 멋진 사람이고,
얼마나 진심으로 응축된 땀을 흘리고 있는지 엄마는 알고 있기에.
힘내라!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