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앞 어묵BAR로 어묵Flex하러 같이 가실래요?

골목길에 얽힌 추억

by 책닮녀


오랫동안 간절히 꿈꾸던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행을 결정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3년 반 만에 학사학위를 취득하여 조기졸업을 했다. 한 학기 등록금이라도 아껴 어떻게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 졸업을 하고는 작은 기업체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도 했다. 계약직이었지만 급여가 꽤 쏠쏠했기에 부모님은 아예 자리 잡기를 바라는 눈치셨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로지 꿈을 향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열심히 모았지만, 막상 서울에 가서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등록하고, 남은 돈으로 살 집을 구하려니 서울의 물가는 터무니없이 높았다. 하는 수 없이 고시원을 알아보았다. 방 안에 화장실이 딸린 곳은 상상조차 못 할 비싼 가격이라 그림의 떡이었다. 이름만 고시원이지 고급 오피스텔처럼 휘황찬란한 곳도 있었다. 나는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지만, 여자와 남자가 층이 분리되어 있어,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고시원을 택했다. 비록 전용 화장실은 포기했지만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창문'이었다. 단칸방에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외롭고 깜깜할 텐데, 나의 별은 잘 있는지, 여전히 빛이 나는지, 하늘조차 올려다보지 못하는 건 고욕일 테니까. 나는 몇만 원을 더 주고라도 창문 있는 방을 선택했다.

꿈을 향해 더딘 발걸음을 내딛는 나에게, 창문은 한 줄기 햇살을 비추어 주었다. 아침이 왔음을 알려주고, 더 단단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햇살과 바람에 영양분을 담아 내게 보냈다.


하지만 그런 창문이 때로는 독이 될 때도 있었다. 고시원은 연세대학교 대학가 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있었다. 주변에 술집이 많아 저렴한 것도 선택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골목길 사거리에 위치한 고시원은 밥집, 술집에 빙 둘러싸여 있었다. 대부분의 술집은 지하에 있거나 실내에 있어 별달리 방해가 되지 않았지만, 딱 한 군데가 나를 괴롭혔으니, 창문에서 훤히 들여다 보이는 어묵 Bar. 포장마차 형식의 개방형 가게였다.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 장사를 하기 때문에 그 안의 풍경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치명적이었다.

그 시절, 어묵이 비싼 안주가 아니었음에도, 나에게는 그 조차도 사치였다. 낮에는 아카데미에 가서 실습을 배우고, 곧바로 아르바이트 장소로 향했다. 밤에는 학원을 다니며 필기 공부를 했고, 주말에는 여러 개의 스터디 모임을 이어갔다. 몸도 여유가 없었지만, 금전적으로도 늘 쫓겼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는 더욱 메말라갔다.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배는 고팠다. 어묵 국물 냄새가 어찌나 나를 괴롭히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한 번쯤은 가볍게 맥주 한잔, 어묵 하나 먹었어도 별일 없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1mm의 틈도 없었기에, 고시원으로 들어와 삼각김밥의 포장지를 뜯으며 그저 창문 너머로 바라만 보았다. 한참 동안....


지금도 술집이 즐비한 골목길을 걸으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안쓰럽고 헛헛해서, 삼각김밥을 꾸역꾸역 집어넣던 그때처럼, 여전히 목구멍이 바짝 마른다. 꿈을 좇느라 배고팠던 시절, 나의 꿈을 키우던 그 골목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 그 가게가 남아 있을 리 없지만, 그 자리에 생긴 어떤 가게라도 들어가서 상다리 부러지게 시켜놓고, 배불리 먹어보고 싶다. 눈물 젖은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젊은 시절의 나를 데려다 앉혀놓고 어묵 Flex를 시켜 주리라.



주머니 두둑하게 채우고,

나의 추억 속 골목길로 떠납니다.

어묵 Flex 하러 함께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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