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르다'는 시어머니들의 가장 큰 착각
어릴 적부터 나는 엄마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난 시댁에 딱 붙어살 거라고.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부산에 사는 게 싫었다. 맘 놓고 시험도 볼 수 있고, 원하는 강좌도 들을 수 있는 수도권에 살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면 버스에 기차에 지하철을 타고 하루를 몽땅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때문에 시집은 무조건 서울로 갈 거라고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했다. 내 아이가 원하는 건, 제약 없이 할 수 있도록, 수도권에 자리 잡을 거라고. 그래서 시어머니 옆에 딱 붙어 살 거라며 미리미리 정을 떼곤 했다. 콧소리 섞인 애교를 떨며 시어머니와 팔짱을 끼고 쇼핑도 하고 마실도 가는 게 꿈이라고, 시아버지와 술상 펴놓고 독대를 하며 살 거라고,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엄마 없이는 못 사는 막내딸이지만, 엄마와 헤어짐을 감수하고서라도 멀리 가서 살 거라고 큰 소리를 쳤다.
사람은 생각하는 만큼 생각대로 이루어진다고, 나는 서울 사는 남자를 만나 경기도에 터전을 잡고 가정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 전국에서 크게 주최하는 대회, 체험행사를 맘껏 누릴 수 있었고, 아이가 아프면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수술을 받기도 했다. 딱 내가 원하던 대로. 하지만 한 가지 내가 그리던 것과 다른 현실은 시어머니와의 다정한 데이트나 시아버지와의 소소한 시간은 먼 이야기였다.
우리 시어머님은 참 좋으신 분이다. 인사를 드리러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거짓으로 대한 적은 한 번도 없으시다.(실상은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나, 나란 사람 자체를 좋아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분이시다. 물론 시어머니기에 가끔은 생각이 어긋나기도 하고 나랑은 다르구나라고 많이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언제나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분. 그래서 신랑과 나, 우리 아이를 아껴주시는 분이시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며 어머니와 붙어 있노라니 문득 나는 어떤 시어머니가 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음식을 만들며 어머니는 요즘 이상한 시어머니들이 많다며 다른 친구분 이야기를 꺼내셨다.(근데, 이분은 진짜 이상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나는 좋은 시어머니는 아니지만, 이상한 시어머니는 아니야"라고 하셨다. 하하하 웃으며 "어머님 좋은 분이셔요"라고 말씀드리긴 했는데, 아마 어색하고도 어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님이 좋은 분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문득 그 이야기를 들으니 세상 모든 시어머니는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한다는 농담 섞인 진담이 생각나서였다.
나는 어떤 시어머니가 될까? 시어머니가 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더 다행이었을 텐데, 아쉽게도 슬하에 아들이 있는 터라,, 그리고 아무래도 이 아이는 결혼을 할 것 같아서..(여자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런 먼 미래의 일을 괜스레 걱정하고 고민해본다.
난 이런 시어머니면 좋겠다.
적당히 멀리 사는 시어머니, 명절에는 한 끼 식사만, 그것도 럭셔리한 외식으로 하는 시어머니,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옛다 기분이다!' 하며 몇 장의 용돈을 투척할 수 있는 시어머니, 제사는 필요 없으니 나 죽거든 다 같이 모여 내가 좋아했던 후라이드 치킨에 맥주 한 잔 하거라~ 하고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시어머니,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니 간섭하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시어머니, 만나면 드라마 이야기만 하지 말고 요즘 어떤 책을 읽는지 대화가 통하는 시어머니, 가끔은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는 시어머니, 시댁에 오면 손자, 손녀가 좋아하는 간식 말고 며느리가 좋아하는 간식도 미리 준비해 놓는 시어머니, 아이를 맡아서 돌봐주지는 않지만 가끔은 '오늘은 애들만 놓고 놀다가 와~ '하고 부부의 시간을 마련해주는 시어머니, 남겨줄 유산이 그래도 좀 있는 시어머니, 시아버지보다는 오래 살아서 가족 간의 평화를 잘 지켜주고 떠나는 시어머니.
이 많은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물론 나도 시어머니가 되면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라겠지만, 그때가 되면 '우리 시어머니가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셨구나' 하고 끄덕끄덕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좋은, 존경할 만한 어른이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나의 입장에서 며느리를 이해시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멋진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음 그런데,,, 우리 아들이 9살인데 저,,, 너무 앞서갔나요?
어쨌든, 나의 좋은 시어머니보다 더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말씀!
시댁에서 후달리며 글을 쓰는 중이라 급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