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닮녀 Feb 21. 2022

이웃이 벗이 되는 경험 있으신가요?

나에게는 『감자 이웃』의 할아버지 같은 벗이 있다.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웬만하면 방역수칙 철저하게 하며 야외활동을 지속해 나갔던 우리 가족의 일상도 잠깐 멈춤을 외쳤다. 야외 활동을 나갔다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음식점에 가서 밥을 사 먹는 것도 괜히 겁이 났고, 아이들 학원이 끝날 동안 잠깐 커피숍에서 즐기던 쉼표 같던 시간들도 '사치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나에게 쏘았다. '그래, 조심하는 게 좋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혹여나 양성 진단을 받아, 그나마 소소한 행복을 누리게 하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 행복마저 누리지 못하게 될 까 봐 조심조심 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이웃과 아니, 벗과 헤어졌다.




그림책 『감자 이웃』에는 할아버지가 집집마다 감자를 나누어 준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일주일 내내 감자만 먹어야 할 만큼이나 풍성하게. 그날 아파트 이곳저곳에서는 감자 익어가는 냄새가 솔솔 난다. 닭볶음 탕, 감자 샐러드, 감자 넣은 생선조림, 감자전 등 맛있는 요리가 푸짐하게 만들어지고 하나, 둘, 할아버지의 식탁으로 찾아간다. 푸짐한 식탁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웃의 정, 따끈한 서로의 온도가 내 몸을 데운다.


 


5년 전, 이곳으로 이사와 아무도 모르는 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직장에 몸담고 있던 터라,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고, 1층에 살고 있으니 딱히 마주칠 사람도 없었다. 기껏해야 옆집 사람들과 가벼운 목례 정도 하는 사이였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맘으로 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조금씩 이웃들이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윗집은, 우리 아이들과 나이가 똑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거기에 큰 아이들이 같은 유치원, 같은 반에 다니게 되면서 안 친해지려야 안 친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연결되다 보니 엄마들도 아빠들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 언니, 동생 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오랜 친구보다 더 다정한 이웃이 되었다. 그 언니는 나에게 이웃이 무엇인지, 나누는 게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이었다.


언니는 가족들과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면, 꼭 그곳의 기념품을 챙겨 와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거창하고 비싸지 않아도,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것들을 건네었다. 처음에는 뭐 이런 걸 줄까? 서로 불편하지 않을까? 하고 달가워하지 않았다. 받으면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으로 느꼈 던 것이다. 하지만, 언니의 마음은 진심이었고 그 진심은 계속 이어졌다. 요리를 잘 못하는 언니지만, 주말이면 가끔 요리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우리 집 벨이 울렸다. 뜨끈한 미나리 전과 아주 작은 락앤락 통에 멸치 볶음 조금 넣어 아이 편으로 보냈다. 곧 깨톡 하고 메시지가 도착한다. '많이 한다고 했는데 이것밖에 안 되네. 맛없어도 맛있게 먹어'라고. 이런 소소한 것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직접 느끼게 해 주었다.


무언가 거창해야지만 나눌 수 있다고, 값어치가 적게 나가는 것은 남들이 싫어할 거라고 애써 배려하는 척하며 나누지 않았던 나는 그 언니 때문에, 언니 덕분에 조금씩 변해 갔다. 건강이 나빠져서 잠깐 휴직을 한 언니에게 꼭 집밥을 먹이고 싶어 불고기에 두부조림, 콩비지, 애호박전까지 손수 부쳐 대접을 했다. 이제껏 조금씩 받았던 것이 너무 많아서, 소중한 깨우침을 준 게 너무 고마와서. 맛있게 먹어주는 언니가 참 고마웠다. 그런데 다음 날, 어김없이 '딩동' 벨이 울렸다. 문을 열었는데 보라보라한 꽃다발이 확 들어왔다. 정성 어린 밥상을 대접받아 아픈 것도 감동했다며 다시 나에게 꽃을 선물한 언니.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꾹 참았다. 진짜 이웃이 있어서 행복했다. 내가 나누고, 또 나눔을 받고 소소한 행복이 이런 거구나...


그런 언니가, 새 보금자리를 찾으러 떠나게 되었다. 언니는 직장생활에 바빴고, 나는 나대로 바빠서 이사 가기 전 작별 인사를 미루고 미루었는데, 이 놈의 코로나는 언니와 나를 전화 한 통으로 갈라놓았다. 결국 우리는 마지막 만찬을 언젠가 꽃이 피는 봄으로 기약하며 헤어짐을 맞이했다.


비록 나의 벗과 헤어지게 되었지만,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을 가져오는 법. 천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새로운 이웃에게 그 언니가 주었던 정을 나누어야겠다. 내가 먼저 감자 이웃의 할아버지처럼 감자 한 봉지를 내밀며 진짜 이웃이 되어야겠다. 받은 만큼, 아니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앤과 다이애나처럼 우리... 다시 만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