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기도 전에 느끼는 인생철학
올해 초, 도서관 강좌 채용 공고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출했다. '그림책으로 글쓰기'라는 프로그램. 기존의 그림책 프로그램을 강의하고 있지만, 초점이 어른보다는 아동에게 맞춰진 프로그램이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는 조금 달랐다. 그림책이 너무 좋아서 그림책으로 위로받고, 그림책으로 제2의 인생을 꾸리고 있는 나는 많은 어른들과 인생 속에서 그림책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림책을 보며 느꼈던 점을 생각만 하지 말고 글로 끄적이는 시간들이 좋아서(좋은 일은 널리 널리 퍼뜨려야 제맛이니까) 그림책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는 수업을 기획했다. 엉겁결에 도서관에서 합격 문자가 왔다. 얏호!!!! 진심의 소리가 마음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업이 코앞으로 닥치자 맘이 쪼그라들었다. 작가도 아닌 내가 무슨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글을 쓰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림책 이야기라고 해놓고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하찮게 보이지는 않을까? 자신이 없어졌다.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막막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신청 인원은 많지 않았다. 글쓰기의 붐이 일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글을 쓴다는 걸 다들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것도 절실히 느꼈다. 몇 분 안 되는 수강생들과 어떤 이야기로 2시간을 이끌어나가야 할까 막막하고 두려워졌다. 그래도 내가 느끼고 나누고 싶었던 걸 담담히 담아내야지, 욕심부리지 말고 나에게 와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채워줘야지라며 맘을 다잡고 강의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7주가 지났고, 앞으로 4번의 수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 출석률은 거의 90%를 웃돈다.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파서 결석한 경우를 빼고는 다들 열심히 참석하고 있는 중. 매 시간마다 나라면 하지 못했을 마음속의 이야기를 털어준다. 때로는 우리의 일상이라서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는 것들도 있고, 때로는 마음이 아파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 순간도 있고, 때로는 따뜻한 에피소드라 헛헛한 마음이 채워지기도 한다.
나보다 인생을 꽤 오래 살아오신, 나이 지긋한 수강생은 앞서 걸어 나갔기에 느꼈던 지혜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나보다 먼저 자식을 키워낸 수강생은 자신이 경험했던 마음의 짐을 우리는 조금 덜 느끼도록 알려준다. 그런가 하면 풋풋하게 상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주는 수강생도 있다. 그녀 덕분에 맘이 콩닥콩닥 설렐 때도 있고, 글은 한 번도 안 써보았다면서도 맛깔나고 명료하게 글을 써주는 수강생도 있다. 또 언제나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해주고, 먼저 손들어주는 배려 깊은 수강생도 있고, 나의 이름 석자만을 보고는 냉큼 찾아와 엉뚱하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주는 수강생도 있다.
그들과 수업을 하며 나는 매번 느낀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좋다는 것. 누군가는 좋아하는 일이 진짜 밥 벌어먹고사는 일이 되면 싫어진다고. 그래서 아껴두라고 말한다. 사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힘들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원하던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 도 있고,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하는 후회의 순간도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싫어하는 일도 직업으로 삼아본 나로서는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해야 좋다. 그래야 끝까지 버틸 수 있다. 좋아하니까.
그림책이 좋아서, 글쓰기가 좋아서 그림책으로 글쓰기라는 프로그램을 무작정 만들었다. 막상 하고 보니 막막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 투성이라 하면 할수록 좋다. 두렵고 힘들고 어려워도 좋다. 그런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도 가 닿는지, 마음을 푹푹 퍼서 나누어주는 수강생들이 있어서 더 좋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좋은지 누가 그러 모르나!!!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아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좋아서 잡은 그 손을 절대 놓지 말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기를. 두렵지만 행복한 이 순간순간들을 너도 나도 느껴보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또 하는 걸 꿈꾼다.
그렇게 꿈을 꾸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