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호연 Oct 07. 2021

바게트와 사과조림

맛없는 바게트는 어떻게든 소생시킨다.

바게트와 사과조림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를 샀다. 백밀가루와 소금이라는 단순 조합으로 만드는 음식 가운데 바게트는 단연 씹는 맛으로 먹는 빵이다. 보통은 만든 지 하루가 넘지 않아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운 상태의 바게트가 맛있고, 썰지 않은 상태로 집에 가져와 먹을 만큼만 썰어 먹는다. 빵은 톱날이 있는 빵칼로 썰어야만 발효되면서 부풀어 오른 빵의 결을 뭉개지 않고 썰 수 있다. 빵칼을 쥔 손에 힘을 빼고 슬근슬근 움직여 톱날이 자연스럽게 빵의 단면을 부수도록 한다. 물론, 여럿이서 한 끼에 나누어 먹을 예정이라면 서로 부담 없이 집어먹을 수 있도록 구입할 때부터 썰어달라 요청하기도 한다. 


타원형으로 고르게 썬 바게트를 앞니로 물고 당기면 쫄깃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의 식감 차이가 여실히 느껴진다. 맛 좋은 바게트라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하다. 앞서 말했듯 바게트는 오로지 백밀가루로 만든 빵이라 혈당을 빠르게 높인다. 설탕을 넣은 디저트만큼 칼로리가 높지는 않지만 몸에 나쁜 것은 마찬가지. 그런데 여기 오렌지 주스 한 잔을 곁들이면 정말 정말 위험하다. 너무 맛있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바게트는 아쉽게도 실패작이었다. 빵칼로 써는 순간 직감했다. '이 바게트는 망했구나' 겉바속촉이 아니라 겉질속퍽이다. 바게트는 손으로 만져보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실패할 가능성도 높은데, 그럼에도 바게트가 보이면 담고 보는 것은 끼니로 삼기 좋고, 저렴하고, 비록 망한 빵이라도 되살리는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로 적당한 두 가지 대안. 첫째, 브레드 푸딩 만들기. 빵을 잘게 썰어 그릇에 담고 우유와 계란물을 끼얹어 오븐에 천천히 구우면 부드러운 브레드 푸딩이 된다. 바나나를 썰어 넣고 취향에 따라 계핏가루를 솔솔 뿌려 구우면 더 맛있다. 이름처럼 푸딩이나 계란찜과 같이 부드럽게 풀어진 빵을 수저로 떠먹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또 하나의 대안은 누구나 만들기 쉬운 프렌치토스트다. 역시 우유 넣은 계란물에 빵을 충분히 적셔두고, 기름이나 버터 바른 팬에 약불로 천천히 굽는다. 오렌지나 귤처럼 새콤달콤한 과일이 있다면 즙을 내서 계란물에 섞어주면 비린내가 가시고 풍미가 확 오른다. 여기에 전날 만들어 놓은 사과조림까지 곁들였다. 이건 맛없을 수가 없다. 당연히 맛있어야 하는데....


와, 맛없어! 정말 별로야!! 성의껏 구웠는데도 마른 쥐포만큼 질기고 계란을 제외하면 무(無)에 가까운 맛이었다. 아마도 빵을 더 불려야 했을까? 그릇에 올리고 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근사한 아침 같았는데 이렇게 맛없을 수가 있나... 이럴 때는 그냥 현실을 받아들인다. 사소한 실패가 소중한 아침을 망치게 둘 수 없으니까. 질긴 빵을 꼭꼭 씹으면서 '먹어서 에너지를 얻는다', '아침에 시동을 건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끈질기게 씹는다. 그리고 책을 펼쳐, 딴청을 피우듯 읽는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을 늘려줄 뿐 아니라,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좋은 도피처가 되어준다.


그리고 다음날. 


반이나 남은 빵을 버릴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한다. 식빵 껍질로 크루통을 굽듯이, 버터만 살짝 녹여 바르고 오븐에 구웠다. 태울 듯이 바삭하게 구워 와작와작 씹어 먹으니, 바게트의 정체성은 잃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이번에는 씹는 재미가 있으니 학습 성공이다. 


사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알싸한 맛 때문에 - 아마도 저장 가스나 농약의 문제인 듯 - 생으로는 먹지 못하고 방치했던 것을 잘게 썰어 조린 것이다. 조린 사과는 말캉하면서도 사각사각 기분이 좋고, 일부는 쫀득하기도 하다. 조림에 첨가한 계피향이 군침을 돌게 하여 계란말이에 올려 먹으면 서로 맛을 강조해주는 느낌. 이번엔 성공적인 아침 식사다. 책으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즐기면서 먹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이 만든 샐러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