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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Oct 21. 2021

젓가락으로 먹는 미역국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미역국이 아니라 미역 전골이 아닐까?


"왜 이것보다 큰 냄비가 없지?"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하는 불평이다. 


미역국은 냄비 한가득 끓여도 매번 아쉽기만 하다. 반쯤 남은 냄비를 들여다보며 한 끼니 더 먹을 수 없나 궁리해 보았자, 먹기 시작하면 국그릇을 리필하기 일쑤다. 입맛이 없는 날에도 반갑고, 할 일이 많아서 끼니를 거르기 쉬운 때 간편하게 배를 채우기 알맞다. 뜨거운 것은 뜨거운대로 맛이 있고, 식은 것은 식은 대로 맛있다. 


미역국의 주연인 마른미역의 잠재 능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수분이 없으니 실온에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물에 불려 끓이면 양이 수십 배로 불어난다. 물을 삼킨 미역이야말로 본래 미역에 가까운 모습이겠지. 온갖 것들의 맛이 진하게 우려진 국물에 둥둥 떠 있는 미역을 보면 종종 바닷속의 미역을 생각한다.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해초는 살아있지 않을 때에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미역을 씹는 행위에 집중한다. 미역의 지나간 생명이 살아 있는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조리 전에 내가 미역을 불리는 시간은 대강 한 시간이 넘는다. 보통은 '미역국을 끓여야지' 생각하고 한참이 지나, 그다음 끼니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끓이게 되므로 미역이 얼마나 물속에 있었는지 도통 기억하기 어렵다. 해물로 끓인 미역국보다는 소고기 미역국을 좋아하고, 때로는 비건식으로 된장과 두부로만 맛을 낸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약간의 소금과 참기름만 있다면 재료가 있는 대로, 혹은 없는 대로도 얼마든지 끓일 수 있는 것이 미역국이다. 


소고기는 가장 저렴한 샤부샤부용 냉동 고기를 저장해두는데, 볶음요리뿐 아니라 국을 끓일 때에도 제법 사용한다. 샤부샤부용 고기는 얇아서 볶는 동안 흩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의외로 국물 맛은 좋다. 또 얇기 때문에 미역과 함께 건져먹기도 편하다. 도톰하게 썬 양지 부위라면 고기를 먼저 볶은 다음에 미역을 넣지만, 샤부샤부용 고기는 미역을 먼저 볶은 다음에 넣는다.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미역을 넣고, 달아오른 냄비에 미역이 붙지 않도록 나무주걱으로 뒤집어가며 느긋하게 볶는다. '내가 아는 그 냄새'가 날 때까지. 볶는 중간에 어간장을 넣어 미역에 밑간을 한다. 어느덧 미역의 색이 초록빛을 띠고 바다 냄새가 진하게 올라오면 샤부샤부용 고기, 맛술을 넣어 고기가 익는 대로 물을 붓는다. 뚜껑을 덮고 한참 끓이면 완성. 고기가 없어도 비프 스톡이나 치킨 스톡을 넣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어디까지나 미역이 주연인 이유다. 나의 미역국은 보통 식재료가 바닥났을 때 끓여서인지 마늘 한 톨이 없어 못 넣을 때가 태반인데, 간 마늘의 감칠맛이 없더라도 미역에 대한 사랑으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 


아, 입안에 부드럽게 퍼지는 미역.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간다. 간혹 미역줄기의 심지가 연한 뼈처럼 오독오독 씹혀 지루할 틈이 없다. 미역을 볶을 때 넣은 어간장의 도움으로 은은하게 간간하다. 간장의 쿰쿰한 냄새를 날려주는 약간의 술 덕분에 국물은 한결 부드럽다. 


미역처럼 건더기가 흐물흐물한 국은 숟가락으로 떠먹을 경우 자꾸 입가에 묻히거나 흘리게 되어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국을 먹을 때에도 젓가락을 함께 사용한다. 건더기는 젓가락으로 집고, 국물은 숟가락으로 떠서 번갈아 먹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웬만큼 좋아하는 국이 아니면 건더기를 위주로 먹게 된다. 간이 된 국물은 나트륨 과다 섭취의 원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저 건더기를 더 좋아해서 국물을 남기는 것이라 의도치 않게 건강한 습관이 됐다. 


국물보다 건더기가 많은 미역국. 밥 한 술 뜨지 않고 젓가락으로 절반쯤 집어 먹은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는 미역국. 밥이 없어도 밥으로 먹는 미역국.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미역국(soup)이 아니라 미역 전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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