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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Oct 06. 2021

남이 만든 샐러드

섭(subway)세권은 생명이어라.


야채는 제철이 아니면 그램당 가격이 고기보다 비싸다. 야채가 반드시 고기보다 저렴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빠르게 상하고 대부분 냉동 보관이 불가하다는 점에서 저장성이 좋지 않다. 집에 식재료를 쟁여 놓아야 마음에 놓이는 사람(=나)은 아무래도 잘 무르는 잎채소류는 부담스러워 구입을 주저하게 된다. 다양한 채소를 넣은 샐러드는 꽤 손이 많이 가는 메뉴다. 그래서 가끔은 직접 만드는 가성비의 셈법을 뿌리치고 샐러드를 사먹는다. 직접 싱싱한 채소를 고르고, 상처가 나지 않게 주의하여 씻고, 식수로 헹군 다음 물기를 제거해 먹기 좋게 다듬는 모든 과정을 다른 사람이 해준다니. 여기에 절약되는 시간과 노동을 생각하면 오히려 가성비와 효율이 좋은 음식이다. 


오늘의 샐러드는 서브웨이에서 사온 터키 샐러드. 최애 메뉴인 터키 샌드위치보다 1.5배 가량 비싸지만 그만큼 채소의 양이 많다. 식사빵을 곁들이면 한 팩으로 두 끼를 먹을 수 있다. 드레싱은 오직 레드와인식초만 더하는데, 가볍고 산뜻한 채소 본연의 맛이 가려지지 않아서 좋다. 


빵을 곁들인 샐러드나, 빵으로 야채를 감싼 샌드위치나 뱃속으로 들어가는 재료는 같은데 먹는 기분은 참 다르다. 샌드위치는 마치 김밥과 같다. 모든 재료가 한 입에 들어오기를 기대하며 크게 한 입을 벌려 씹는다. 때문에 재료의 배치가 중요하고, 이에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샌드위치의 빵은 야채의 수분을 빨아들여 좀 더 부드럽고, 녹은 치즈는 마치 소스와 같이 다른 재료에 섞여든다. 두 손은 샌드위치가 흩어지거나 뭉치지 않도록 빵을 붙들고 있다. 샐러드는 반대로 모든 재료가 자유롭게 흐트러져 있다. 양상추, 토마오, 오이, 피망, 올리브, 할라피뇨와 피클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입안에서 주인공이 된다. 내 젓가락질에 따라 이번 한 입과 다음 한 입의 맛은 달라진다. 곁들이는 빵을 씹는 순간에는 오로지 밀가루와 곡식의 맛과 향이 입을 점령할 것이다. 그러니 쓰인 재료가 같아도 샐러드와 샌드위치가 전혀 다른 음식으로 여겨질 만하다. 이렇듯 어떤 먹이는 그 자체보다 먹는 행위, 내용보다는 형식에 따라 전혀 다른 관념의 음식이 된다. 동일한 것이 있다면 '건강식을 먹었다'는 흐뭇함일까.  


새로운 동네에도 서브웨이가 있지만 걸어서 다니기는 부담스러운 거리에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섭세권(=도보 5분 거리 안에 서브웨이가 있는 동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한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한 회차에 두 번 씩 서브웨이가 나오지만, 돈 받고 해주는 광고라도 어불성설이다. 섭세권은 생각보다 드물고 소중하니까. 아무래도 다른 샌드위치, 혹은 샐러드 전문점을 찾아 동네를 탐색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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