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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Oct 22. 2021

현미밥과 김칫국

평범한 요리에는 이토록 자아 없는 김치가 어울린다.


매 끼니 새로 밥을 하는 친구가 있다. 쌀밥에 진심인 그는 심지어 돌솥으로 밥을 짓는다. 그런 정성으로 먹는 밥은 얼마나 맛이 좋을까? 나는 다행히 밥에 그만큼 진심은 아니어서, 맛이 덜하더라도 냉동밥을 만들었다가 데워 먹는다. 한 번에 쌀 4컵 분량의 밥을 지어서 용기에 나눠 담아 얼린다. 먹을 때마다 용기째 데워서 뚜껑만 열고 먹는다. 그래서 내가 찍는 밥상의 밥은 플라스틱 용기에 든 모습일 때가 많다. 도자기로 된 밥그릇은 오직 밥을 새로 했을 때에만 꺼내어 담는다. 당연히 냉동밥은 갓 지은 밥만큼 맛있지는 않다. 그래도 메뉴에 따라서는 어느 밥이든 맛이 다르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국에 만 국밥, 차에 만 차(茶)밥이다. 


어딘가에 말아먹는 밥은 부드럽고 연한 쌀보다 알알이 씹히는 현미밥이 좋다. 도정하지 않은 백 퍼센트 현미밥을 먹는 동거인과 나는 현미밥이 우리 건강을 지켜주는 마지노선이라고 믿는다. 건강을 위한 최고의 실천은 운동임을 알면서도, 내킬 때에만 몸을 움직이는 사람일수록 먹는 것으로 모든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법이다. (바로 내 얘기다) 사람에 따라 현미 냄새를 못 견디는 경우도 있다는데, 나나 동거인이나 우연히 입에 맞아서 다행이다. 평소에 꾸준히 건강한 식단을 고민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종종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 같은 몸에 안 좋은 음식이 당겨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적어도 그런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하다)


가끔 백미로 지은 밥을 먹을 때면 오랜만의 별미처럼 산뜻하게 느껴지지만 현미밥을 이틀 이상 거르면 그 쫀득한 식감이나 구수한 맛을 그리워하게 된다. 김칫국에도 현미밥을 말아먹는다. 김치만 잘 익으면 맛있는 것이 김칫국이고, 여기엔 무엇을 말아도 맛있겠지. 김칫국을 끓일 때 김치가 너무 익었으면 간을 맞출 때 소금을 쓰기보다는 된장을 한두 스푼 넣는다. 의외로 된장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고, 익은 김치의 군내와 신맛을 적당히 잡아주는 비법이다. 된장을 넣기 전과 넣은 후에 국물 맛을 보면서 어디에든 기가 막히게 된장을 쓰는 엄마의 비법에 감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는 엄마의 손맛과 아주 먼, 대기업에서 만든 썰어 만든 김치를 먹는다. 어느 개인의 고집이나 취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그야말로 '자아 없는 맛'이 특징이다. 기업 차원의 투자와 레시피 연구, 소비자 기호를 분석한 결과물인 이 김치는 특정인의 입맛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팔리도록 아주 적당하고 애매한 맛을 낸다. 이런 김치는 '맛있는 반찬'으로서 대접받지는 못하지만 김치볶음밥이나 김칫국, 부침개 등의 요리를 만드는 데에는 제격이다. 어느 지역의 젓갈 맛, 어느 지역의 양념 맛도 나지 않고 털어낼 양념도 많지 않은 그저 그런 김치. 평범한 요리에는 이토록 자아 없는 김치가 어울린다. 


요즘은 예보에 없는 비가 오는 날이 잦은데 그런 날도 김치 요리를 더하면 그럭저럭 기운이 회복되곤 한다. 오늘 건강하게(?) 현미밥과 김칫국을 먹었으니, 이 다음은 좀 덜 건강하게 부침개를 부쳐먹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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