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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Dec 21. 2021

동지에는 새알 팥죽

일 중독자는 계절의 변화를 절기 음식으로 깨닫는다

엄마와 함께 먹던 전라도식 동지 팥죽


내가 광주를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서울 음식은 정말 맛없다(정확히는 '먹을 게 없다'고 했다), 겨울에는 얼마나 추운지 아느냐, 서울살이 만만하게 보지 마라.... 딱히 귀 담아 들은 말은 없지만 이 말들이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기는 했다. '서울' 사람들의 적당한 거리감이 나는 좋았고, 음식은 전라도의 그것보다 슴슴하여 입에 맞는 편이었다. 뼈가 시리게 추운 겨울도 간혹 겪었지만 그것도 견딜만했다. 겨우내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보일러를 넉넉하게 때며 버텼으니까. 그도 어려울 땐 뜨거운 국물 요리를 먹어서 몸을 데웠다. 만만하지 않은 거야 어디에 살든 마찬가지 아닌가. 고향 사람들의 조언은 오히려 내가 얼마나 적응을 잘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기준이 된 셈이었다.


그런데 팥죽만큼은 적응이 안 됐다. 내 자취 인생의 유일한 고향 타령을 팥죽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의 '파워 적응 비법'이라고는 없으면 없는 대로 수긍하고 애초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지만 팥죽에 기대하는 바는 다르다.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 맛이 없어도 먹지만 먹으면서도 늘 맛있는 팥죽을 생각한다.


나는 팥과 멥쌀을 모두 곱게 갈아 만든 새알 팥죽을 좋아한다. 광주에서는 늘 그런 팥죽을 먹었다. 남도에서는 새알심 대신 칼국수 면을 넣은 '팥칼국수'를 즐겨먹기도 하는데, 한 번에 다 먹지 못하면 면이 퉁퉁 불어서 내가 좋아하는 국물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새알심 팥죽이 좋았다. 엄마도 나와 음식 취향이 아주 비슷해서 한때는 단짝처럼 둘이 몰래 동네 맛집으로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래 봐야 비빔국수나 짬뽕, 감자탕 같은 것이었지만, 새알심 든 팥죽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서울 올라와 먹은 팥죽은 좀 달랐다. 멥쌀을 갈지 않고 통째로 넣어 밥알이 씹히는 팥죽은 고향을 떠나 처음 먹어보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구성일까? 찹쌀을 빻아 새알심 만드는 것도 일거리이니만큼 죽에다 묵은쌀을 넣어 씹을 거리를 만들었던 옛사람들의 지혜일까? 궁금증을 안고 쌀알이 든 서울식(?) 팥죽을 종종 사 먹었다. 그러다 어느 재래시장에서 새알심이 든 팥죽에도 쌀알이 함께 든 것을 보고 국물에 건더기가 없으면 성의 없다고 느끼는 한국인을 위한 배려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오아시스 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팥죽이 눈에 띄면 비상식량으로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으면서도 속으로는 '쌀알이 없으면 더 맛있을 텐데' 생각한다. 누구에게는 쌀알이 알알이 씹히는 이런 팥죽이야말로 영혼이 당기는 음식, '소울 푸드(soul food)'겠지만 나는 결국 내 입에 착 붙는, 내 영혼이 당기는 '그 맛'을 그리며 아쉬워한다. 곱게 갈아 만든 팥 국물에 새알심 동동 띄운 팥죽이 먹고 싶었다. 새로운 것에 잘 적응한다고 해서, 좋아하는 걸 쉽게 잊거나 덜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같은 동짓날에는 어릴 때 먹던 그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다. 먹으면서 자연스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와 함께 살던 시절에는 계절의 변화를 바깥 풍경보다 절기 음식으로 깨닫고는 했다. 나는 바깥에 꽃이 피는지 낙엽이 지는지 무관심한 사람이었고, 일 중독이었다. 아주 강건한 사람도 좀처럼 버티기 어려웠던 폭력적인 가정 안에서, 엄마는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 찾기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나와 다르게 늘 어디에 어떤 꽃이 피는지 낙엽이 지는지 관심이 많았고, 제철 음식과 과일을 가족들에게 먹였으며 어느 절기가 되면 당신이 어릴 때 먹던 음식을 그리워하며 만들어 내고, 나에게도 그리움의 씨앗을 심어놓곤 했다.


그 씨앗이 자라서 동짓날마다 '그 팥죽'을 외쳐대는 내 모습이 꽤 재미있기도 하다.


언젠가 뉴스레터 <매일마감>에 쌀알 넣은 팥죽에 대한 심드렁한 소감을 적었더니, 고맙게도 한 친구가 전라도식 새알 팥죽을 보내주었다. 새알과 죽이 따로따로 포장되어 왔는데 끓여서 먹어보니 내가 알던 그맛이었다. 광주에서 먹던 동지 팥죽의 맛. 먹을수록 함께 팥죽을 먹던 엄마의 모습이 선명했다. 자립하여 살아가다 보면 가족과는 몸도 마음도 일부러 멀어지기 마련이지만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추억을 공유한 사람이 눈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기억이 들이쳐 먼 사람이 가까워진다. 먹으면서 바라본다. 내 안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어떤 것들. 도저히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가끔은 동지가 아닐 때에도 팥죽집에 냄비를 들고 가, 담을 수 있을 만큼 담아서 사 왔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는 새알심이 싫어서 조금만 달라했는데, 어른이 되니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신선한 찹쌀의 풍미가 좋다. 처음에는 많아 보여도 먹다 보면 금방 부족하다. 방앗간에서 막 갈아서 반죽한 찹쌀의 냄새는 눈이 많이 온 날 새벽에 바깥공기를 크게 들이마실 때의 냄새와 닮았다.


너무 맛있어서, 내가 그리던 그 맛이어서, 마음이 그만 먹먹해졌다.


어둡고 텁텁한 겨울밤의 색을 닮은 죽 안에 곱게 빚은 새알들이 동동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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