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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Sep 17. 2021

평범한 매일의 먹이

먹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나는 매일 먹는다. 잠을 안 자는 날은 있지만,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안 마신 날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환경의 변화로 먹이사슬에 문제가 생기거나, 울마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 숱하게 죽는 동물들의 삶을 생각하면 '나'라는 동물이 속한 인간 사회가 괴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먹이를 확보하고 저장하며 스스로 공급하는 동물은 과연 얼마나 될까. 


현재 인간이 개입하는 세계는 디스토피아를 향하여 착실히 나아가는 듯하다. 산림과 생태계를 잿더미로 만든 거대 산불들, 이상기후 때문에 전보다 예측이 어려워진 장마와 수해, 오늘도 전 세계 수십 만 명의 확진자를 만들고 있는 코비드-19 감염병 유행까지. 인류애를 잃은 어느 창작자가 과도한 설정으로 짜낸 인류멸망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마음 놓을 데가 없는 날들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매일 먹어야 한다. 집에서 해 먹는 밥과 배달음식, 카페나 식당에서 먹는 음식을 분류해 어느 식단을 특별 취급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끼니가 너무 많다. 같은 메뉴를 반복적으로 먹고, 먹는 동안에 느끼는 즐거움 또한 익숙하다. 새로운 음식도 다음 끼니를 앞두면 잊기 일쑤다. 그럼에도 먹는 일에 종종 몰두하고 마는 것은 적어도 그러는 동안에는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날마다 닥치는 생존의 고민과 불안 가운데 그나마 변치 않고 지속되는 무엇을 절실하게 찾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먹이를 구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먹는 일이었다. 


화가 노석미의 '먹이는 간소하게'라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채소를 직접 키워서 먹고, 그 형태와 색감, 냄새 등을 탐닉한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먹고사는 일이 동물의 그것에 비해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 문장에 나는 깊이 공감했고, '먹이'라는 표현을 내가 먹는 음식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자급자족을 일구는 노석미 작가의 식생활은 내가 가장 이상으로 여기는 모습이지만, 그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일 것이다. 아니, 애써서 평범하도록 만든 그 자신의 순전한 일상이다. 


그에 비하면 '나의 먹이'는 어떠한가. 재료를 사 오거나 배송받는 과정에서 많은 물자와 에너지를 소비하기에 어디로 봐도 ‘간소한 먹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서울이라는 ‘특대’ 도시에 살기를 선택한 자로서 간소한 먹이를 추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서식지와 생태가 다르다고 할까.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나도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든다. 국수를 삶거나 빵을 굽는다. 그럼에도 나의 식생활은 타인의 노동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종종 식당에 가거나, 배달 음식을 먹거나, 간편한 레토르트, 즉석밥과 컵라면을 먹는다. 아마도 어떤 이에게는 후자가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먹이일 테다. 


먹이를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꼭 일치하지 않는, 협업과 분업이라는 시스템이 특대도시의 인간을 버티게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남을 먹이고, 돈을 벌어서 나를 먹인다. 모두가 경쟁의 대상이자 병원균의 운반자일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협업의 시스템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은, 안정적인 먹이 공급을 위해서다. 결국 우리는 먹어야 하는 동물이므로. 먹는 일이 생의 목적일 수 없지만 역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먹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지극히 우울하고 힘겨웠던 20대에도 나는 매일 먹었다. 그렇기에 지금 살아서 이곳, 인터넷이 나에게 할애한 백지 앞에 있다. 좋아하지 않아도 먹고, 눈앞에 있으니 그저 먹었으며, 불안과 걱정들은 먹는 동안 조금 흐려졌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먹는 일조차 고통인 사람도 있겠으나, 어떻게든 내일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는 먹는다. 


찬장에서 미역을 꺼내 불리고, 식빵을 굽거나 버섯을 볶으면서 스스로 일깨운다. 내가 처한 현실은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재난 영화가 아니고, 나는 그곳의 주연도 조연도 아니라는 걸. 미래의 불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이미 지나간 불행을 모두 합쳐도 그동안 내가 먹은 평범한 밥과 먹고자 하는 본능을 이기지 못했다. 또한 나를 생존으로 이끈 주변의 보살핌과 다소 온화했던 환경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좀 더 본능에 기대 보고자 한다. 매일 먹어왔던 평범한 밥의 힘을 믿어보자. 원래도 걱정이 없으면 새로운 걱정을 만들어 살지 않았던가. 걱정은 걱정대로 제 갈 길이 있다. 그러니 이 가여운 짐승을 달랠 만한 적당한 먹이를 제공해야지.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매일의 먹이, 그 평범한 일상의 안도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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