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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Sep 24. 2021

모닝커피와 토스트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아침에 마실 커피를 상상한다.


모닝커피와 토스트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떤 날은 저녁을 이르게 먹은 탓에 단지 배가 고파서 각성이 된다. 그럴 때 나는 야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아침에 마실 커피를 상상한다. 달큼한 향이 공간을 채우고, 입안에 머금으면 새콤 씁쓸하여 함께 먹는 모든 것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음료. 여름에는 얼음을 넣은 아이스커피가, 나머지 계절에는 따뜻하고 감미로운 드립 커피가 내일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서 잠을 재촉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는 평소보다 먹는 양이 적고 음식의 맛을 고스란히 즐기기가 어렵다. 주로 먹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저작운동을 열심히 해서 잠을 깨자', '뭐든지 먹어서 오전에 쓸 에너지를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입에 넣고 씹는 데에 집중하고는 한다. 하지만 커피를 곁들이는 날은 아침 식사가 조금 다르다. 커피와 함께라면 오븐에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 한 조각을 씹는 것도 즐겁다. 


다소 뻑뻑하게 느껴지는 빵에 묽은 잼을 발라 입에 넣으면 상큼한 베리 향이 군침을 돌게 한다. 나머지 절반은 알맹이가 큼직하게 든 땅콩버터를 발라 느리게 씹는다. 입안에 든 음식을 전부 씹어 삼킬 즈음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꿀꺽. 커피에 홀린 내 혀는 이전에 먹었던 음식의 맛을 싹 잊는다. 리셋된 상태에서 다시 토스트를 씹으면, 마치 처음 한 입 같은 신선하고 뚜렷한 맛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모든 공이 커피의 몫일 수는 없다. 식빵도 중요하다. 집에서 구운 통밀 식빵 만한 게 없지만, 내 힘을 들이지 않고 사 먹는 식빵도 의미가 있다. 토스트는 무엇보다 '간편한 아침'을 위해 선택하는 메뉴이니까. 내가 먹는 식빵은 삼립에서 나온 로만밀 통밀 식빵. 한 봉지에 420g, 9조각이 들었다. '통밀 식빵'이라고 쓰여 있지만 맛을 보면 통밀의 존재는 미미하다. 이 식빵은 건강하려고 먹는 게 아니라, 순전히 맛있어서 먹는다. 밀가루 베이스에 다른 곡식 가루를 넣어 흰 식빵의 밋밋함을 지우고, 견과류를 넉넉하게 넣어 씹는 맛을 더했다. 너무 크거나 잘지 않게 분쇄된 이 씨앗들은 씹을 때마다 아주 은근하게 존재를 드러낸다. 직접 구운 빵에 비할 수는 없지만 2천 원을 조금 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역시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다. 계란 프라이를 올려 먹거나, 단순히 버터와 꿀을 발라 먹을 때에도 느껴지는 맛의 결이 다양하다. 


건강을 생각하면 과일잼이나 땅콩버터는 멀리해야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는다. 커피도 카페인 민감증이 있기에 오히려 길티 플레져를 느끼는 게 아닐까. 약간의 죄의식은 먹는 즐거움을 과장되게 부풀린다.


날마다 모닝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시작하는 이가 많으리라 짐작한다. 겉보기엔 매우 단출한 식사이지만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근사하게 변모하기도 한다. 아침식사의 대명사와 같은 '커피와 토스트' 조차 여러 기호에 따라, 많은 선택을 거쳐 내 식탁에 마련되는 것이다. 


아침마다 원두를 갈아 드립 커피를 내리고, 내 기호에 맞는 식빵을 고집한다. 과일잼을 바른다면 그것은 지난 계절 직접 만든 수제 잼이거나 믿을 만한 브랜드의 것이다. 원두와 식빵과 잼의 가격은 모두 비싸지 않은 것들이지만 여기에는 '아무거나'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의 고민과 선택의 시간이 들어 있다. 


내가 느끼는 매일의 이 작은 기쁨은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무엇을 좋아할 수 있을지 끝없이 탐구하면서 알아내는 과정 속에 있다. 여기에 대단한 탐구심까지는 필요 없다. 그저 궁금한 것을 먹어보고, 몇 백 원 차이라면 약간 더 좋아하는 것을 사고, 어딘가에서 경험한 맛있음을 기억하고 직접 구현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스스로 얼마나 먹는 것에 진심인지 알겠다. 평범한 매일의 먹이에 대해 쓰고 있으나, 아주 평범한 먹이에도 이렇게나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사실을 낱낱이 고백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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