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이 왜곡된 건축결정권
한국건축의 가장 큰 문제는 실무경시다. 이유는 모르나, 유독 국가 자격(과거의 면허)중 국가정책이나 당사자 운명에 대해서 가장 자기 발언권이 약한 분야다.
우선 당사자들을 구성하는 첫 단추인 자격시험에 대해서 정부는 당사자보다 교수들의 의견에 더 집중한다. 교수들을 빌어서 관료들의 의지가 관철되는 것인지, 아니면 교수들의 발언권을 빌어서 정치인 또는 관료들이 이용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배경이던 분명한 것은 자격시험에 대한 방향키와 내용 주도권은 전반적으로 교수들의 주장을 애용하고 있다.
덕분에 1965년 국가경제규모와 비례해서 늘려나가던 건축사를 200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배출하고 있다. 특히 어떤 국가자격도 안 하는 연간 2회 시험을 실시해서 양산 중이다. 문제는 시험을 두 번 보거나 자주 보는 것에 있지 않다.
이들이 건축사로서 건축설계산업에 얼마나 종사하려는 의지와 애정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건축사의 본업은 분명히 건축 설계이지 건축기사의 업무가 아니다.
이런 내용에 대한 정의 없는 양산은 기존 건축가들이 요구하는 방향은 아닐 듯하다. 그 결과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과잉양산된 건축사들 모두 건축에 대한 의지와 철학이 있지 않다. 건축설계산업에 대한 절실함과 기대감이 부족한 이들이 더 많이 양산되는 것이 아닐지 우려스럽다. 어떤 이들에겐 경쟁시회에 필요한 일개 자격증일 것이다.
문제는 건축사 시험의 내용이다. 건축사 윤리나 철학을 평가하지 않는다. 건축사 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사회적 사명감과 윤리, 건축이 도시와 삶에 미치는 영향, 후대에 전해질 미학적 의무감을 평가하지 않는다. 더 큰 문재는 이런 자격시험의 주도권 역시 현업 건축사가 아닌 관료와 교수들이 진행하고 있다.
적어도 설계를 강의하는 건축과 교수는 국내던 해외던 공인된 자격증이 있어야 하며, 실무경력은 필수여야 한다.
건축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자는 원대한 꿈으로 관련법 제정도 되었고, 그 결과 대통령 직속의 국가건축정책위원화가 생겼다. 아쉽게도 건축을 더 잘하자고 만들어 놓은 국가위원회가 본래의 취지와 맞지 않은 인적 구성으로 지속되고 있다. 정치적 고려와 안배인지 몰라도 매 위원회의
1/3은 건축사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다수가 아닌 경우도 있다. 공개적인 명분으로 탈경계라는 개념으로 건축을 전혀 모르는 교수가 되기도 한다. 이들이 문제는 일선 건축이 어떻게 작동되고 움직이는지 본질을 모른다는 점이다. 실무를 모르니 당연하다.
문제가 또 있다. 건축시장의 첫 단추이다. 특히 공공의 개념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설계경기에서 시작된다. 국가는 이를 조달청을 통한다. 조달청은 실무/현업 건축사를 일개 업자로 보고 이들을 배제하고 있다. 조달청 진행 건축 설계공모는 100% 교수로 운영된다.
전 세계 어느 나라 건축 설계공모 심사가 현업이 배제된 설계공모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방식을 들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국내외 어떤 건축사 자격도 없고, 설계경험 전무한 아마추어가 심사위원으로 채워지는…
한두 명 비평가 시각의 심사위원이면 몰라도
사실 현업 건축사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한 번도 상을 수상한 경험도 없고, 설계공모에 당선된 경험도 없고, 해당 프로그램의 건축을 해본 적도 없는 건축사가 순번으로 심사위원 하는 것도 웃긴다.
식당 손님이 모두 미식가가 아니지 않은가? 미슐랭 평가를 누가 하는가? 안목과 권위는 정말 필요 없는가?
왜 한국 공공건축이 후져졌냐면? 기회도 적었지만 6,70년대는 그래도 권위 있는 이들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 경우 비율이 높았다. 그렇게 국회의사당으로 학생이던 김수근이 등장했고, 프랑스 매체에 마오는 제주대학 본관이 가능했다. 국립극장의 디테일이 가능했다.
당시보다 훨씬 커지고 많아졌지만 여전히 생산되는 비율로 보면 현재의 설계공모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더구나 수많은 건축사들이 경쟁 우성이라는 결과에 내몰려 공삭적 착취당하고 있다. 마약이다. 한두 번 되면 좋겠지… 열정과 창의의 뇌손상이 쌓이는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