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국 건축은 죽었다

한국 건축의 독자성회복 방법

by 홍진

서양이 증기기관차 이후 수많은 기계들을 발명하고, 과학이론이 나왔다. 거의 동시에 식민지 쟁탈전과 군사력이 증대되었다. 놀라운 것 이런 모든 상황들이 거의 동시대네 전개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부는 급증했다.


서구열강의 이런 변화 끝자락을 부여잡고 재빨리 동승한 나라가 일본이다. 덕분에 일본은 동아시아 문화의 표본처럼 서구에 등장했다. 혼돈의 변화시기에 등장한 일본 문화는 서구인에겐 하나의 티핑포인트 순간이었다. 사회 문화 전반에 자극제가 되었다. 르누아르부터 고호까지 영향은 강력했다. 쟈포니즘이라는 사조가 생겨날 정도다. 같은 동아시아인으로 보면 질투가 난다. 왜냐면 문화라는 것이 가까울수록 유사성과 동일성을 가진다. 때문에 서구인에게 알려진 일본 스러움 중 상당수는 동아시아 공통이 많다. 하지만 어쩌랴 세상일이 다 운칠기삼인 것을… 운을 놓친 스스로를 슬퍼할 뿐.


건축의 관점애서 보면 서구와 교류하던 일본은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 왜냐면 문화의 장르 중 건축은 가장 늦게 변하고 적응하기 때문이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건축의 변화에는 발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스 로마부터 이어져온 서구인의 고전 건축이 오티스의 엘리베이터와 디트로이트의 철강산업과 어울리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자동차를 주차해야 할 집의 등장은 유럽인을 혼란스럽게 했다. 눈치 빠르고 상상력 풍부한 젊은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운 좋게 변화
시작점에 동승한 일본 건축


고전건축은 더 이상 아니야라고…그런데 문제는 대안이 없었다. 젊은 청춘의 힘이 무엇인가? 불만과 도전이다. 야망에 불탄 시카고의 가난한 천재 건축가 프랭크로이드라이트는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영국의 윌리암 모리스는 뭔지 모르지만 산업시대에 맞는 미학과 예술이 존재하리라 믿었다. 스위스에서 건너온 프랑스 건축가 르꼬르뷔지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건축의 시간은 혼돈 속 도전과 모험 그 자체였다.


운 좋게 일본 건축은 이 시대에 발을 담갔다. 산업화 시대에 지진이 일상으로 있는 나라의 새로운 건축은 서구인들과 비슷한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덕분에 바우하우스에는 일본인 학생과 교수들이 등장했고, 일본 건축가들의 과감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건축을 고민하다 군국주의의 극우가 지배하면서 민족주의가 건축에 섞이기도 했다. 억지로 섞어 요상한 공공건물이 등장한 것도 20세기 초반이다. (참고로 한국애서는 7-80년대에 이런 기형적 건축이 다수 등장한다.) 신고전주의 풍 건물 현관 지붕이나 중앙 돔자리에 청동 기와가 앉혀지는 형식이다. 엉뚱하게 신사의

지붕이 바로크풍 건물 지붕으로 놓인다던가 했다.

이런 시기가 지나면서 전후 일본에서 앙팡테리블 같은 건축세대가 나온다. 물론 바우하우스에도 일본인 학생과 교사가 있던 것처럼 르꼬르뷔지에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스튜디오에도 일본인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유학가지 않은 일본 건축가들이 산업화 시대에 맞는 건축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점이다. 뭐랄까 일본식 모더니즘? 아무튼 이런 건축의 사유적, 또는 철학적 고민은 서구와 발맞춰서 끊임없이 토론되고 논의되었다.


그리고 60년대 영국의 아키그램이나 프랑스의 68 혁명처럼 일본식 아디이어가 발표된다. 이른바 매타볼리즘. 나중에 이때 발표된 시각적 이미지들은 일본의 SF만화 배경으로 종종 등장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기 생각을 갖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설파하는 진지한 건축가들이 많다. 이론보다 작품으로 말하는 타다오 안도 뿐만 아니라 쿠마겐코, 이토 토요, 시게루 반, 가즈오 세지마 등등… 입에서 술술 나온다. (일본 건축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책을 보면 정말 지겹게 나온다.) 백 년의 호흡 속애서 나타난 현상이고 그들의 문화다. 옆나라 전문가로 일본의 건축가가 가장 부러운 이유 중 하나는 사회가 인정해 주고, 그런 인정 속에서 자라나고 성장해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건축은 다른 어떤 문화 장르, 예술과 차이는 건축가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이 들어가고, 시공자가 완성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존중받아야 성장한다. 그럼 성장은 자기 확신으로 남고 생각을 당당히 발언하게 된다. 발언은 철학이고 토론이다. 논문 각주 대고, 누구의 생각을 옮기는 것이 아닌 자기 고유의 시각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질없는 시간으로 여겨지고, 거친 자기 생각은 다듬어질 기회를 못 가진다. 성장하기 전에 부러지기 일쑤다.


왜 일본이 부럽냐면, 우리나라는 이런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스타일리스트 건축가는 많지만, 찰학적 사고를 설명하고 유지하기 어려운 건축문화와 환경이다. 토양으로 치면 바다를 매립한 곳이다. 나트륨 가득한 땅에 나무가 자라기 힘든 것과 같다.

그냥 수입만 하기엔 아쉽다. 우리 안의
창작을 존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토론과 사색의 건축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문제는 “누가” 하며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창작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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