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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국 건축은 죽었다.

선분양 후시공이 망쳐놓은 한국 건축 바탕

by 홍진

어느 나라나 주거 건축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도시의 특징을 만들어 낸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도시 경관 이미지는 뭘까? 오랫동안 우리나라 도시 모습, 또는 동네 이미지는 나지막한 구릉진 자연경관을 따라 숲과 어울리는 자연색의 지붕과 모습이었다. 이 모습이 지금도 유효할까? 안타깝게 이미 사리진 풍경이다. 과도기인 70년을 지나 80년대, 특히 IMF이후 급격히 변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한 도시 경관, 우리나라의 이미지는 건축이 주도한 것이 아니다. 정책이 주도했다. 그게 뭐냐면.... 천재들이 만든 빠르고 쉬운 주거공급정책이었다. 알다시피 70년대는 고도성장기간이었다. 전교 꼴찌가 어느 날 정신 차려서 공부를 시작하면, 일정 성적까지 수직 상승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가나보다 낮은 경제 생산력을 가진 나라가 정신 차려 뛰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를 이렇게 비교하는데 사실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록으로 몇천 년의 역사를 기록한 시스템 국가를 가진 나라였다. 고조선까지 가지 않아도, 당장 고구려, 백제, 신라의 기록이 존재하고, 거의 400년 넘는 고려와 500년의 조선이 존재한 나라다. 그랬기 때문에 식민통치를 벗어나서 헤롱 되는 잠깐의 시간을 지나 정신 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산업화 시대로 진입된 6,70년대 우리나라의 인구 이동은 가히 광속도로 움직였고, 이런 인구 이동은 극심한 주거난을 일으켰다. 전쟁피난민 이주 수준이었다. 당연히 머리 좋은 천재들이 정부에 있었고, 이들은 돈 없는 정부가 어떻게 주거난을 해소해야 할지 골똘히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탁월한 정책 하나를 도입한다. 전 세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선분양 후시공"이라는 정책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 단지라고 하는 마포 아파트도 지어놓고 팔았는데, 사람들이 하도 난리를 치니 먼저 팔고 나서 짓자는 것이다. 이런 정책의 배경에는 집 지을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도 돈이 없었고, 집 지을 건설사도 돈이 없었다. 대부분의 나라처럼 짓고 팔려면 돈이 필요한데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하냐는 현실적 고민이 있었다.


자 그럼 방침이 결정되었으니 한번 해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바보가 말만 듣고 물건을 살까? 온라인 쇼핑이 대세인 지금도 현물을 보지 않고는 사기 어렵다면서 굳이 백화점 매장 가서 옷을 입어보고 사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하물며 집을?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큰돈으로 구매하는 것이 집이다. 그런 집을 보지도 않고 산다? 제정신이 아닌 거다.

정책입안가들이 벽에 막혔다. 어떻게 선분양에 성공할 수 있을까? 돈 찍을 한국은행도 준비되어 있고, 돈 받아 대출해 줄 은행도 준비되어 있는데 문제는 대출담보 잡힐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언제 무너질지 모를 시공하는 업자를 믿고 건설비용을 대출해 줄 수 있는가? 건설비용관련한 사이클을 돌려야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방법은? 먼저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이익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들 먼저 사려고 할 것 아닌가? 다행히 주거난으로 집값은 조금씩 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이런 집값 상승을 인지하고 있으니 여기에 부채질만 조금 불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이다.


분양권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분양권을 사고팔 수 있게 묵인하면 어떨까? 이 고민을 왜 안 했을까? 충분히 했을 것이고, 다만 그 결과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의도 모래사장에 시범아파트를 테스트 삼아 해보았는데, 대 성공이다. 이렇게 세계 유래가 없는 "선분양 후시공의 부동산 대성공"시대가 시작되었다. 6,70년대는 사업계획서만 승인받으면 분양할 수 있었고, 분양 성공으로 들어온 계약금으로 정부가 수용하고 개발한 택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건설사들은 실제 돈을 거의 내지 않고 사업계획서 승인으로 아파트 지을 토지의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건설사들과 정부관료, 은행의 유착은 부정부패였고 그렇게 부동산 투기가 싹을 틔운 것이다.


"공돈"으로 건설사 자산이 증가하는 시스템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 구조는 2024년 지금도 유효하다.

아무튼 이 시기 연일 터지는 "복부인"기사는 많은 시민들에게 분노를 일으켰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에겐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준 고마운 기사였다.

생각해 보자... 새벽부터 줄 서서 분양권을 받으면 그날 분양권의 몇% 또는 몇 배의 현찰을 프리미엄이라는 웃돈을 받고 팔 수 있는데 어느 누가 줄을 안 서겠는가? 그러다 보니 관료도 정치인들도 은행가나 심지어 법조인들도 이 줄을 서게 된 것이다. 인생 로또를 준다는데 누가 거절하겠는가? 70~80년대 신문이 사회면 톱기사 상당수가 바로 아파트 분양권과 관련된 부정부패 기사였다.


이제 사람들은 "선분양 후시공"으로 인한 자산 증식의 마력을 맛보았고, 공짜돈으로 건설사들은 규모를 키우고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주택이 가져야 할 기본 가치로서 공간은 의미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주거가 가져야 할 여백의 공간은 공유공간 비율의 증가로 축소되었다. 아예 제거되었다. 르꼬르뷔지에가 말한 공동주택의 건축적 장점, 토지 효율성은 수익극대화라는 시선으로 바뀌어 적용되었다. 성냥갑 아파트라는 낙인으로 대한민국의 도시 풍경을 채우는 건축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득이 올라가고 국가 수준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거주하는 환경에 대한 요구도 올라간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쉽지 않았다. 유사한 건축형태로 도시를 채운 싱가포르의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그들은 철저한 토지 임대부 개념으로 주거가격을 안정시키면서 공급정책을 적용해서 우리나라 같은 부동산 투자붐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에 일정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도시 경관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재건축 절차에 돌입하는데, 토지가격 자체를 정부가 통제하고 있어서 건설비용의 추가 부담만 반영하면 되었다. 우리나라 아파트 분양가의 60% 이상이 토지가격인 것을 감안하면 싱가포르의 정책이 부러운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렇게 싱가포르의 아파트는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모든 아파트가 그런 것은 아니나 2000년대 이후 상당수 아파트들이 재건축되었는데, 이들의 선택은 보다 건축적 가치에 집중한 것을 이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각종 시설들을 배치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반영한 다양한 주거 평면이 디자인되었다. 이웃과 함께 하는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각종 생활 인프라 시설들이 구비되었다. 무엇보다 이들 주택들에 거주할 수 있는 경제적 부담이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저렴하다는 것이다. 60년 정도 지난 싱가포르의 아파트들은 건축가들의 향연장이 되고 있다. 수익성 좋은 건축보다는 삶의 쾌적함과 윤택한 생활에 포커스를 맞추는 "시민귀족" 삶의 가치를 충족시킬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최근 이런 가치실현의 공간들이 제안되고 발표되고 있다. 다만 전제가 다르다. 대한민국 1%가 거주하는 특별한 계급의 주거 공간임을 강조하고, 선민의식의 지배계급 거주 공간을 드러내놓고 광고하는 아파트인 것이다. 끝없이 올라가야 가능한 "선붕양 후시공"시스템에서 지속가능한 유효함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모두가 사고 싶은 (실제는 부동산 가격 차익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아파트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지고 제안된 아파트들이 싱가포르의 아파트들과 유사하다. 외형은 같은데 둘의 본질이 너무 다르다. 한국 건축에서 공동주택이 "상품"이 아닌 "삶을 위한 진정한 건축"으로 재정리되려면 제도부터 개선되어야 하는데.... 누구도 바꾸길 원치 않는다. 그러니 "후시공"의 단점을 극대화시키고 여론화하고 있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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