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건축

by 홍진

건축과 건물의 차이 — 공간을 짓는다는 것의 의미


서울 종로구의 어느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한옥과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 한옥의 처마 밑에서 햇살을 피하던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어떤 공간은 나를 멈추게 하고, 또 어떤 공간은 그저 지나치게 되는 걸까?’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건축’과 ‘건물’이라는 개념의 차이로 이어졌다.


건물(building)은 물리적 구조물이다. 인간의 생활을 보호하고 기능을 제공하는, 즉 ‘쓸모’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이다. 반면 건축(architecture)은 단순히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을 넘어서, 인간의 삶, 사회, 문화, 시간, 감정이 스며드는 총체적 예술이다. 건축은 물리적 구조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건축은 인간의 내면을 담는 ‘장소’와 ‘경험’, ‘기억’을 만드는 작업이다.


“거주함이란 단순히 지붕 아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존재를 느끼고 그 안에서 의미를 짓는 행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건축이 단순히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임을 드러낸다. 우리는 벽이 아닌 그 사이의 틈에서 숨 쉬고, 창이 아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서 감동받는다. 건축은 이 틈과 빛, 그리고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을 고려한다.


현대 도시의 많은 공간들은 ‘건물’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예로 고밀도의 아파트 단지를 들 수 있다. 일률적인 평면, 반복되는 입면, 똑같은 창호. 이들은 기능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지만, 삶의 결을 담기 어렵다. 아파트도 건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표준, 대량 생산’된 아파트의 출발에 이런 시각이 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더. 그러나 그 순간, 그것은 기능을 넘어선 공간, 다시 말해 사람과 삶을 존중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도 건물과 건축의 차이를 확연히 경험할 수 있다. 비록 누구의 디자인인지 알려진 경우는 전무하지만 거친 목재의 기둥과 벽이 만나고, 산간의 누하마루 밑으로 이동하는 순간 마음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마포구 양화진의 절두산 성당에서 만나는 선들과 빛의 흐름은 보다 마음을 자극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일반인도 많이 아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들을 보면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준다. 그는 콘크리트, 빛, 그림자라는 제한된 재료로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만든다. 오사카의 ‘물의 교회’를 떠올려보자. 단순한 사각형 공간에 정면이 트여 있고, 그 너머로 물 위에 십자가가 서 있다. 이 교회는 종교적 기능만을 위한 ‘건물’이 아니라, 침묵과 내면, 사유를 유도하는 ‘건축’이다. 사람은 그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공간과 관계를 맺는다. 물의 교회는 물리적 구조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 성찰이다.


또한 건축은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담는다. 익선동의 리모델링 한옥들은 본래 임대주택으로 지어진 소박한 건물들이었지만, 지금은 도시재생의 상징이자 과거의 삶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었다. 동일한 형태의 건물도, 그에 얽힌 기억과 이야기를 담는 순간 ‘건축’이 된다. 이는 알도 로시가 말한 ‘기억의 도시’ 개념과 맞닿는다. 도시와 건축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정체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화려한 장식과 과장, 온갖 치장으로 된 경우는 어떠한가? 그것은 건물인가 건축인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이국적 치장으로 상징적인 레고 성 같은 결혼식장들은 건축인가 건물인가?

사실, 아무리 화려한 외형의 건물이라도 시간이 흐르며 삶과 관계 맺지 못하면 금세 폐허가 되거나, 흉물이 된다. 한때 유행으로 거리를 채웠던 직설적이고 유아적 디자인으로 우뚝 서 있던 건물들이 지금은 없다.

이는 건물이지만 건축은 아닌 경우다.


이러한 차이는 교육의 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건축학도는 벽의 두께나 창의 위치뿐 아니라, 왜 그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들은 기능적 요건 외에도 공간이 감정, 관계, 빛, 시간, 그리고 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교감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반면 건설 중심의 실무에서는 종종 이런 고민이 배제된다. ‘얼마나 빠르게, 저렴하게, 튼튼하게’가 중심이 되고, ‘왜 이 공간이어야 하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난다.


결국 건축과 건물의 차이는 그것이 인간과 맺는 관계의 깊이에 달려 있다. 건물은 서 있는 구조이지만, 건축은 존재하는 방식이다. 건물은 지을 수 있지만, 건축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지어진 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건축’이 된다. 그래서 자기의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설령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나열해서 볼 때 드러나는 경우는 바로 철학적/ 사유적 건축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는 벽돌을 쌓는 기술자가 아니라, 공간을 짓는 철학자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웃고 울었는지를 떠올려 보자. 그 기억이 명확하다면, 우리는 이미 그 공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 공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건축이다. 건축은 단지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말해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진정한 건축은 우리 삶의 틈새를 어루만지며, 말없이 우리를 안아주는 공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디카건축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