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하고 찬바람 스친다.
겨울이 꽁꽁 깊어가는 소리
손끝에 묻은 겨울이
책장을 넘긴다
.
졸음도 추위에 얼어
시간을 잊어버렸나보다
책속의 주인공은
어린이가 되고
타박타박 산길을 걸어
외갓집으로 걸어간다
국화잎 바른 창호지 문밖은 눈이 오고
할머니방의 화롯불엔
따뜻한 불꽃이 피어난다.
“옛날에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할머니 입은
호랑이를 부르고
할머니 손은
수북이 쌓인 바느질감을 꿰매고
“그래서... ..그래서.....”
“호랑이가 어슬렁 어슬렁 마을로 내려왔거든”
문밖의 호랑이는 깜빡 놀란다.
손녀도 할머니 치마를 붙잡고
눈을 똥그랗게 뜬다.
“그래서..그래서..”
문밖의 호랑이도 귀를 쫑긋
“그런데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있거던”
“그게 뭔데? 그게 뭔데?”
밤이 점점 깊어 가도
할머니 앞의 바느질감은 아직도 수북이 남아
“그게 그게 뭐인고 하니 ”
할머니는 마음이 바쁘다.
반지고리 당새기도 다 엎어버리고
개어놓은 옷가지도 다 흩어버려도
그래도 귀여운 빙해꾼 손녀에게
“우리 강생이지 우리강생이가 젤 무섭지”
“어흥 어흥”
할머닌, 두손으로 호랑이 흉내를 낸다.
방밖의 호랑이는 그 길로 놀라 달아나 버렸다.
“에고 나보다 더 무서운 우리강생이란 놈이 방에 있었구나 ”
시간도 꽁꽁 어는
이렇게 추운 겨울밤이 오면
책속의 어린이는 타박타박 산길을 걸어
시골 외갓집으로 간다.
창밖은 언제나 눈이 내리고
화롯불처럼 피어나는 추억은 시간을 잊는다.
작가의 변
'겨울밤' 시는 편안히 써내려갔다.
더할 것도 없는 어린시절의 나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그리운 나의 할머니와의 행복한 시간들 중에 한 장면이었으니
하지만 어려운 건 그림이었다.
그당시 그 방의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의 가구며 복잡한 살림살이들, 주변을 정리하여 가장 동화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기에
예를 들면 방 웃묵에는 싱거 미싱이라든지 거울달린 옷장이랄지 ..
또 방밖의 이야기속의 호랑이 이미지는 어떻게 배치할까라든지 나를 위한 그림처럼 디테일하게 표현하였다.
우리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내가 태어나기전 가난을 삯바느질로 헤쳐나갔다고 들었다.
그래서 였는지 아니면 그 당시 1960년대 할머니들은 모두 바느질을 많이 하셨는지
아무튼 나의 할머니는 저녁설걷이가 끝나면 늘 바느질감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나는 이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할머니를 온전히 내가 독차지 하고
온갖 짜투리천들과 실타래들로 장난하고 할머니에게 옛날애기를 조르는시간 행복하기그지 없는 시간이었다
그시간에 외로운 사람은 건너방 할아버지였다,
철없는 손녀가 할머니를 독차지한 시간에 건너방에서 잔기침을 하며 신호를 보내다 보내다
밤 구워준다는 핑계로 숯불을 들고 오셔서 얄미운 손녀에게 "이야기 좋아하면 시집가서 가난하게 산다고 나무라셨다. 그런 할마버지에게 할머니는 ' 할배요 방비잡소 건너방에가 주무시이소'
생각하면 나에겐 할머니지만 그때가아직 50대중반이셨다.
방학에 모처럼 손녀가 오면 지극한 손녀사랑으로 각방에 찬밥신세이니
생각해보면 내가 큰 불효막심손녀이다. 할아버지껜 죄송하지만 눈감으로 떠오르는 행복한 어린시절의 추억은 내 행복상자에 꼭꼭 보관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