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가 바라는 것
얼마 전, 우연한 술자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팀에 대한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함께한 상대가 개발자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술자리에서 할 법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는데 2시간을 훌쩍 넘겨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불편함들로 시작했으나 술이 들어갈수록 점점 꿈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번 글은 팀에 대한 내 생각, 비전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1.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2. 기획자의 업무 역량은 대화
3. 팀, 그리고 사람
4. 다만, 이런 건 바라봄직 하다
사람을 만나고,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와 생각을 나누는 일은 어렵다. 각자가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과를 보아도 누군가는 사과의 맛을 떠올리지만, 누군가는 그 사과가 얼마나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문득, 군대에 있을 때 화장실에 늘 붙어 있던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떠올랐다. 소대장을 하던 당시 수도 없이 읽었던 그 시를 보며, 아니 그 시를 떠올리며 소대원들에게 '좋은 소대장' 아니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어렸고, 생각 또한 더 짧았던 만큼 실수도 많았으며 그 친구들에게 부족한 점도 많았을 것이다. 의무로 입대를 하였던, 자의로 입대를 하였던, 군 생활을 함께해야 하는 그 친구들에게 존경받고, 기댈 수 있는 그런 지휘자이자 지휘관이 되고 싶었다. 내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에 어쩌면 본인들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조직에서, 그 친구들이 '내 목숨을 한 번 걸어볼 만한 사람'이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내 결정에 그들이 다치거나, 죽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정현종
기획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다. 기획안을 완성하면 해야 할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기획안을 토대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디자이너, 개발자와도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서비스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디자인과 개발이 들어가기 전에는 기획안이 어떠한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를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에게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서비스를 구현하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서비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토대로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겪다 보니 기획자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역량은 대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서를 잘 만들고, 프로토타입을 잘 구현할 수 있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녔다 하더라도 결국 기획자 혼자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기획자는 홀로 존재하기보다는 함께할 때 더 빛이 나는 사람이다. 기획자가 해야 하는 모든 업무는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생각을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발로이자 결국, 구성원들과 효과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획자가 가지는 어려움에 대한 얘기들을 보다 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것들이 개발자와의 의사소통, 디자이너와의 의사소통 문제이다. 많은 경우 개발자들은 '할 수 없다'라고 하고, 디자이너는 '안 이쁘다, 불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개발자들의 '할 수 없음'은 '주어진 시간 안에 할 수 없다'라는 의미이거나 '그렇게 하게 되면 바꾸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아져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의 문제지 정말 '할 수 없다'는 아니다. 디자이너 '안 이쁘다'에는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어색하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져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이며, '불 필요하다'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복잡하게 보인다'거나 '고객 경험을 긍정적으로 최적화하기에 적합하지 않다'의 문제지 정말 '안 이쁘고, 불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물론, 개발자던 디자이너던 정말 할 수 없고, 안 이쁘다고 느껴 얘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들도 같은 팀이고 같은 서비스를 만들어나가는 구성원으로서 서비스가 성장하고 나아가서 잘 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는 기획자와 같은 마음이다.
결국 우리는 팀이고,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 결국 우리는 같은 서비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기에 우리의 서비스가 잘 되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같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 각자가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경험한 것이 다르고, 배운 것이 다르고, 전문성을 가지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으로 서비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화를 이끌어나갈 줄 역량을 가진 사람이 기획자이지 않을까.
다시 술자리로 돌아와서 당시 개발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고 상상하던 것들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잖아요. 우리가 서비스를 만들어나감에 있어서 제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어떻게 솔루션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타이르고, 해달라고 조르고, 매번 부탁하게 되며 때로는 강압적으로 해달라고 얘기하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 또한 전달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내 의견에 공감하며, 그렇게 해주겠다며 술을 따라주었다.
나는 기획자로서 구성원과 팀에 바라는 건 결국 '함께 만드는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마음'이다. 그렇기에 서로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영역에서 더 좋은 의견들을 나누고, 더 개선적인 얘기들을 나눔으로써 정말 우리 서비스가 고객들에게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고객들이 우리 서비스를 구매함으로써 서비스가,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구조, 문화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기획자는 팀이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어 고객 경험을 향상하고 나아가 회사의 수익을 가져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고객도, 조직 구성원도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덩어리째 나와 부딪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대화를 나눔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