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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포트 Jan 14. 2024

나의 작은 숲과 사계절


Prologue

누군가 나에게 프리랜서가 되고 난 후 가장 만족하는 점이 무어냐 물어온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변하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게 된 것이라 말할 것이다. 회사원 시절에는 일주일에 닷새나, 그것도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사무실 안에서만 보내야 했기에 계절이 언제,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지냈다. 나는 그게 유독 아쉽고 슬펐다. 날씨가 추워지면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고, 덥다 싶으면 가벼운 옷을 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계절이라는 것이 그리웠다. 가끔가다 낮 시간대에 외근을 나가거나, 저 멀리 출장을 갈 때면 죽어있던 내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오죽하면 외근을 같이 했던 직장 동료들이 신난 내 모습을 보고선 사무실 안에서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해서 민망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프리랜서다. 마음만 먹으면 한낮에도 여유로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리랜서 준비생(?)으로 1년 반 동안 홀로 지냈던 나의 세종집 주변에는 왕복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동산이 하나 있다. 규모로 볼 때나 이름으로 볼 때나(이곳의 정식 명칭은 ‘근린공원’이다) 산이라 칭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제법 숲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기특하기까지 하다. 나는 숲이라는 말이 주는 아늑함이 좋아 ‘근린공원’라는 공식 명칭 대신 이곳을 숲이라 부르고 다녔다. 이곳에 오르는 길에 누군가 전화라도 와서 무얼 하냐 물으면 ‘나 지금 숲에 있는데, 방금 청설모랑 5초 동안 눈싸움을 했어. 겁도 없이 나를 피하지도 않더라니까?’와 같이 말하는 게 좋았다.


나는 이 숲을 오르내리며 ‘계절'의 곁에 원 없이 머무를 수 있었다. 예전에는 한 계절 한 계절이 홱홱 빠르게만 지나가서 봄이 어떤지, 또 겨울이 어떤지 흐릿하게만 느껴졌다면, 계절의 곁에 머물며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하고부터는 마치 음식을 천천히 먹을 때 재료 고유의 맛을 음미하듯이 각 계절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그리고 뚜렷하게 만끽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작은 숲을 통해 몸소 소화해 낸 사계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말이지 훨~씬 더 아름다웠다. 두말할 것 없이 '나의 작은 숲'과 함께했던 시간은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게 행복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 ‘나의’라는 말을 붙인 적이 있었던가. '우리 동네', '우리 집'이라고 말하고 다닌 적은 많아도 '내 동네', '내 집'이라고 부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 숲은 누가 봐도 ‘나만의’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작은 숲을 ‘나의 숲’이라 부르고 싶다. 이 숲을 소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적어도 이 숲 ’나'에게 주는 특별함을 강조하고 싶어서랄까.


앞으로 <나의 작은 숲과 사계절>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할 글은 나의 숲에 대한 헌정글이 될 것이다.


나의 슬픈 날과 기쁜 날, 두려운 날과, 또 희망찬 날을 모두 품어 준 작은 숲에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같은 글.




* 다음 글: <나의 작은 숲과 사계절 - 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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