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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Dec 24. 2016

J가 J에게 전하는 마음

도명산 마애불을 찾아간 여름 날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어 우리들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 것 같어. 그러나 그대의 마음에는  불어오는 계곡의 살랑살랑 거리는 바람처럼, 계곡을 흐르는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고 맑은 물처럼 그런 바람이 불어오고, 그런 물이 흐르는 곳이라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시원함을 주었으면 해...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사람의 기준으로는 무더운 여름이 힘들지만, 자연을 기준으로 한다면 곡식과 과일이 영글어 가는데는 더없이 좋은 날씨가 아닐까? 우리도 힘들지만 이 여름에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비록 적은 숫자일지는 몰라도 학생들이 영글어 간다고 생각한다면 힘을 내서 더욱 열심히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해...    


얼마전에 오전에 수업이 없어 겸사겸사해서 아침부터 등산을 했어. 새벽같이 일어나 7시부터 괴산 화양구곡을 끼고 있는 도명산을 등산했어. 아무도 없는 화양구곡에는 여름의 후덥지근한 그런 날씨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것만 있었어. 그 속을 혼자서 걸었고, 걸으면서 가끔 만나는 화양동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아침 운동하는 것을 보았어. 그들은 무언가에 쫒기거나 서두름이 없이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화양동을 닮아가는 사람처럼 보였어. 우리는 늘 쫒기듯이 살아가는 것 같은데 말이야.   

도명산 정상에서 본 모습


등산을 시작했어. 비온뒤라 산 곳곳에는 작은 계곡들이 맑은 물을 토해내면서 흐르고 있어 기분이 굉장히 좋았지. 그런데도 금새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다리는 아팠었어. 그런데 굵은 땀방울이 흐르고 숨이 가프고 다리가 아파올수록 기분은 더 상쾌해져 갔어. 그리고 내 삶들을 정리하고 나의 일상들을 정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생각과 행동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어 너무 좋았. 내가 다시 살아 숨쉴 수 있는 기운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등산의 시작은 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산에 맞추면서 때론 빨리 때론 느리게 때론 멈추어 서서 솔향을 느꼈고, 때론 뛰면서 바람을 느꼈었어. 그 모든게 산에 나를 맡긴 것이지.


우리도 무언가를 시작할때는 두렵고 힘들지 몰라도 막상 시작만 한다면 그 길에서 울기도 하고 좌절도 하겠지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생겨나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선택한 것들이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    


산은 내가 한발짝 걸은만큼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같어, 그렇게 한발짝 한발짝 딛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어.


우리도 누군가에게 참모습 보고 싶다면 자신이 먼저 맨살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어. 그리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자신이 기대하지 못했던 것까지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    

힘들어서 잠깐 쉬는 동안 내 배낭에 있는 음식들을 하나씩 먹었어. 내가 이것들을 짊어지고 올때는 힘들었지만, 내가 그만큼 힘들게 가지고 왔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도 내가 걸어온 만큼 내가 책임지는 것이고 한편으로 그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늘 진심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 같어.


정상에 섰어. 내가 무의미하게 등산하려고 한게 아니라 무언가를 찾으러 왔는데, 찾지 못했어. 분명히 유심히 살피고 왔는데 말이야. 우연히 만난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어. 나는 정상을 서성이다가 버려진 종이를 발견했고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있었고 다행히 찾을 수 있었지.

내 눈 앞에 선 거대한 바위 그 바위에 하늘 높이 새겨진 불상이 있었어.     

바위에 새긴 불상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도 가끔은 갈 길을 잃을 수도 있어.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연일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로부터 또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 자신의 삶을 가꿔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지도 몰라.    


날씨가 너무 더웠고 산에서 조금 헤매는 바람에 거의 산을 내려왔을 때 맑고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이 보였어. 나는 가던 길을 벗어나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어. 이게 정상까지 등산하고 내려온 보람이 아닐까 생각했어.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총각 팬티만 입고 목욕해, 시원하게’라고 했어. 나는 순간 당혹스러워 ‘괜찮아요’ 하면서 배낭을 챙기면서 아주머니와 짧은 이야기를 하게 됐어. 처음 보는 사람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는데 이야기가 술술 풀렸어. 산이 맺어준 인연이 아닐까? 비록 앞으로 보지 못할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201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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