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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Aug 04. 2017

남자, 홀로 애기들 돌보기- 첫날

아내가 여행을 떠나다

아내가 프랑스로 자유여행을 떠났다. 많은 걱정과 당부를 남기고, 한편으론 설레임을 안고서 떠났다. 떠나기 몇일전부터 남아있을 남편과 아이 둘을 걱정하면서 여행을 준비하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아무 걱정 말고 가라고는 했지만, 평소에 나의 행동을 알고 있는 아내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엌일이라고는 설거지 밖에 안해본 사람이 애기 둘 삼시세끼 밥을 챙겨먹인다는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삼시세끼 밥 챙겨 먹이는 것보다 애기 둘 복잡한 스케줄이 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애기 둘 스케줄을 요일별로 정리해 놓을 것을 부탁했었다. 아내는 꼼꼼하게 요일별로 떠나는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정리를 해 놓았는데, 이렇게 복잡한 일들을 회사 일도 하면서 살림도 하면서 애기 둘을 돌본 것을 보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애들의 일정

아침 일찍 출발하는 아내에게 잘 갔다 오라고 했고, 애들은 특히 아들은 엄마 앞을 가로 막아 서서 못가게 하는 이 일어났다. 여가방을 타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있었다. 덩달아 딸도 앞을 가로 막아 섰다. 겨우 돌아오는 날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의 여행을 허락해주었다.


나는 애들에게 8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할 것을 이야기 했고 그 이후의 스케줄을 이야기했다. 애들은 그 정해진 스케줄을 이해했고 나를 더 이상 깨우지 않고 자기들끼리 놀았다. 일어나보니 거실은 이미 온갖 책들과 장난감으로 어지럽게 되어 있었고 가위질을 한 종이들은 조각조각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단 애들 밥을 해결해주어야 했다. 청소야 좀 안하면 되지만 애들 밥은 꼭 챙겨주겠노라 다짐을 했었다. 밥통에 밥은 넉넉하게 있고 다행히 미역국이 있어서 밥을 말아 주었다. 국이 식을 때까지 놀동안 나는 얼른 밥을 먹고 애들 밥을 챙겨주었다. 다행히 김치와 미역국만으로 한끼를 해결했다.


다음 스케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몇시간 뒤에 움직일 것이니 그동안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했고 나는 휴식을 더 취했고 애들은 자기들끼리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나는 애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이렇게까지 잘 커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고 집 청소를 대충 했다. 그동안 애들 내가 챙겨준 옷을 입었다. 눈에 띄게 깨끗해진 거실을 보고 애들을 데리고 키즈카페를 갔다. 뽀로로는 딸이 좋아한다. 아들도 좋아했었지만 이제 시시하다고 했다. 그러나 동생을 위해, 또는 다른 목적을 위해 기꺼이 함께 갔다. 그런데 알고 온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백화점 문을 여는 바람에 난감해졌다. 옆에 계시던  아기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할머니도 난감해 하셨다. 나는 기다렸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바퀴를 돌더니 나에게 뽀로로 오셨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저쪽으로 가면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애들 손을 잡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뽀로로에 도착했지만 문은 열려 있지 않았고 시간이 될때까지 기다렸다. 딸은 왜 안들어가냐고 했고 나는 아직 시작할 시간이 안됐다고 했다. 딸은 눈앞에 보이는 뽀로로에 왜 안들어가는지 아직 이해하는 단계까지 성숙하지는 못했다. 하나 둘 사람들이 애기 손을 잡고 모여들었다.

키즈카페 입구

나는 줄을 서서 더블할인을 받고 들어갔다. 이 정도는 할줄 아는 아빠가 되었다. 아기들이 많이 없어서 여유롭게 뭔가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애들에게 아빠가 쫒아다닐 수 없는 애들에게 아빠가 있는 곳을 알려 주고 일이 있으면 오라고 했다. 애들은 조금 놀더니 금방 지겨운듯 나를 끌고 여기저기 다녔다. 내가 봐도 여기는 할 것이 별로 없었다. 특히 아들은 키즈카페보다는 무언가 먹을 수 있거나 장난감을 얻는 것이 더 큰 목적이였음을 금새 들키고 말았다. 나는 그런 아들을 달래고 아들은 최대한 이것저것 해 볼려고 노력하는데 지겨운 모습이 갈수록 드러났다. 딸은 뭘해도 지겹지 않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결국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단순한 메뉴를 아들은 거부하고 한식뷔페를 선택했다. 다행히 평일 점심이라 가격은 부담이 없었다. 의외의 선택을 한 아들의 속셈은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넘어갔다.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어 우리도 10여분 정도 대기하고 있다가 자리를 잡았다. 음식들은 예전보다 먹을 것이 없었다. 겨우 몇가지 골라서 먹이고 냉면을 먹였다. 나는 이것저것 배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애들 데리고 돌아다닐려면 체력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애들을 데리고 뷔페를 간다는 것은 정말 노가다이면서 힘든 일이면서 불안한 상황이 올 수 밖에 없다. 음식에 손을 대는 경우, 차가운 얼음을 만지는 경우, 음식을 본인이 집는다고 하는 경우, 접시를 들고 가다 기울여져 쏟아지는 경우, 더 큰 문제는 애들을 앉혀놓고 내가 먹을 것을 가지러 가는 동안 남게 되는 애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등  많은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애들은 다행히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무사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이제 약속한대로 구슬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갔다. 가끔 와 봤지만 백화점 지하는 올때마다 복잡해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애들 손잡고 왔다갔다 하니 매대 아주머니가 어디를 찾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저쪽에 가면 있다고 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쪽에 있었다. 아들은 모자 아이스크림 통을 골랐다. 이때까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그동안 종이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준 것이었다. 나는 망설임없이 모자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아들은 처음으로 모자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만족의 웃음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비가 내렸다. 집을 나설때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렸다. 일단 집으로 와서 애들을 깨끗하게 씻겼다. 위생 내가 밥만큼 신경써야 할 일이다. 그리고 아까 정리못한 일들을 하고 애들 책 읽어 주면서 저녁에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애들에게 몇시에 다시 움직일 것임을 이야기했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했다. 나와 딸은 동시에 잠이 들었고, 아들은 그동안 혼자 이것저것 한 모양이다. 나는 대신 학습시디를 틀어주었다. 아들은 그것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눈을 뜨고 아들은 일어난 나를 보고 기다렸다는 듯이 표창 던지기를 하자고 했다. 요즘 아들은 색종이로 표창을 만들고 던지는 것에 관심이 아주 많다. 본인 가방에 한가득 표창을 만들어놓고 골라가면서 던지기를 반복한다. 놀아주지 못한 마음에 원없이 아들과 표창던지기 대결을 했다. 아들은 아직까지 던지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잘 던질때보다 못 던질때가 훨씬 많다. 그러나 본인은 함께 놀아주는 재미로 거실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밑에 층 주인에게 미안하니 그만 좀 뛰라고 수십번을 이야기했다.


딸은 계속 잠을 잤다. 너무 낮잠을 많이 자면 밤에 잠이 안오니 억지로 깨웠다. 짜증을 내는 딸을 업고 달랬다. 엄마를 찾는 딸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더욱 들었다. 딸과 내가 얼마나 애착관계가 없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다시 우리는 아들이 원하는 밥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집에 밥이 한가득 있지만 엄마를 안 찾게 하면서 애들을 달래는 방법이 뽀쪽하게 없는 나는 애들이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들어줄 생각이었다. 집을 나설때 아내가 신신당부한 음식물 쓰레기를 챙겼다. 그리고 통도 씻었다.

밥집

육계장집으로 향했다. 육계장보다는 그 집에 있는 티비가 목적인 것은 굳이 말안해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역시나 가자마자 애들은 티비앞에 자리를 잡았고 만화를 보면서 세상의 모든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서 티비를 한번도 틀어준 적이 없고, 집에 있는 티빅 고장난 줄 아는 애들은 집밖으로 나와 티비를 보면 티비 앞에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 육계장을 시켜 밥 한공기를 말아서 두개로 나누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평소 같으면 티비 앞에서 불러도 잘 안오는데 오늘은 부르면 바로바로 와서 밥을 먹었다. 심지어 숟가락도 본인이 하겠다고 했고 밥도 더 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티비와 밥을 오고 가던 애들은 밥을 충분히 먹은 이후 티비 앞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 갈 시간이 되었음에도 계속 만화를 보았고, 결국 내가 양보하고 양보했다. 주인은 이런 나를 보면서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조금씩 들었지만 딱히 도리는 없었다. 이제 마지막이야 라는 말을 두번이나 하고서야 밥집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손발을 씻기고 거실에 이불을 펴고, 동화를 틀어주었다. 이때부터 딸은 엄마를 보고 싶다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몇일 밤만 자면 엄마 온다고 이야기했고, 엄마가 오면 장난감을 사러가자고 이야기했고, 안 울고 잘 있으면 큰 것을 사준다고 달랬다. 그래도 누군가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늘 보고싶은 마음 앞에는 어떤 것도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픔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외로움과 같다.


애들 둘을 눕혀놓고 불을 껐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끝났고 딸은 그 소리에 맞혀 세탁기 끝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나는 딸이 불러주면 좋아하는 자장가 오즈의 마법사를 5번이나 불러준 뒤에야 잠을 재우는데 성공했다. 낮잠을 자지 않은 아들은 동화를 들으면서 이미 잠들어 있었다. 어둠속에서 빨래를 꺼내고 어둠속에서 빨래를 널었다.


하루가 이렇게 갔다. 아내의 여행이 이렇게 하루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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