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번과 202번을 만나면 갈수있는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에 있는 돌담안으로 노란색 모자를 푹눌러 쓴듯 자리잡고 있는 지꺼지게를 만났다. 헤매지만 않는다면 버스정류장에서 5분거리에 있어서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짐을 장시간 끌 필요가 없었고 버스로 제주를 둘러보기에 적당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심지어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조용하게 지낼수 있어 좋았다. 언젠가 맞은편에 있던 서울에서 오신 분은 이번 제주여행은 그냥 휴식이라 집에만 거의 있었는데, 이 집은 목적에 맞게 너무 좋은 집이라 했다. 나도 그 의견에 마음으로맞아요 라고 했다.
큰 나무아래 이웃집과그늘을 반나누어 갖고 있는 이 집은 도로보다 낮은곳에 있어서 더 작고 귀여워 보였다. 까치발을 들지 않아도 누구나 안을 훤히 내려다 볼수 있는 개방된 집은 한번은 이곳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였고 1박은 너무 아쉬울 것같은 느낌을 주었다. 대문은 있지만 단순히 공적이 공간인 길과 사적인 공간인 집을 구분하는 정도였다. 몸의 경계는될수있지만 시선의 경계는 될수 없는 곳이였다.
돌담안으로 이란성 쌍둥이 마냥 집 두채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가운데는 잔디가 깔려있었다. 대문 위로 손을뻗어 문을 열었다.잔디 가운데 듬성듬성 놓인돌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걸어갈 길을 안내하였다. 주인을 닮은 집일까? 마당부터 집안까지 깨알같은 소품들이 공간과 공간사이에 있었다. 마당에는 웨딩촬영을 염두해둔 듯한 꽃장식과 테이블이 있었고 내가 묵을 숙소벽에도 각종 소품들이 매달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입구 한쪽 벽에 가득 붙어있는 포스트잇은 칭찬 일색이였다. 다른 벽에는 이 집이 1920년대 지어진 집으로 지금 주인의 증조할아버지가 직접지었다는 이야기와 제주전통가옥의 형태를 살려 리모델링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그 앞으로 예전 사기그릇과 나무로 만든 문패가 이 집의 내력을 보여주었다.
3칸으로 이루어진 집은 거실을 가운데 두고 침대방과 주방겸 방, 화장실겸 세탁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실에는 에어컨과 쇼파, 티비가 있었고 방에는 특이하게 창가에 의자를 두고 앉아서 책을 보거나 밥을 먹을 수도 있는 선반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을 잡다한 물건을 두는 장소로 사용했다. 우리에게는 낭만보다는 실용이였다. 위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져 있었다. 주인장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이용해서 이쁜 사진을 많이 찍고 추억도 쌓으라는 당부도 해두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였고 혹시나 하는 파손 우려에 한쪽으로 몰아두거나 수납장에 넣어버렸다.
부엌은 작았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연인들이라면 키높은 의자에 앉아 밥먹고 차마시는 분위를 연출하기 좋은 구조였다. 주인장은 캡슐커피와 믹스커피를 마련해두는 센스를 가지고 계셨다. 그것 뿐이겠는가? 라면도 있고 쌀도 있고 심지어 수박도 넣어주셨다.
짐정리를 다하고 마당을 둘러보니 한쪽에 수돗가가 있어 바닷가에서 물놀이하고 와서 모래를 털기 좋게 되어 있었고, 숨어있던 빨래건조대도 찾았다.
우린맞은편 손님들이 네번 바뀔때까지 이곳에서 아무런 불편함없이 지냈다. 삼시세끼 밥을 먹고 청소하고 쓰레기가 차면 마을가운데 있는 분리수거장에 가서 버렸다. 여행이 아니라 생활의 공간만 바뀐 것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