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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Mar 23. 2017

어라연과 잣봉

누군가의 죽음

무거워진 땀방울이 방울방울 내 몸을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산속의 시원한 바람도 굵어진 땀방울을 날리지는 못했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발걸음을 사뿐 거리며, 가끔 내 발끝에 차이는 돌들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합니다. 산길 옆 이름 없는 주인의 무덤에는 할미꽃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보라색 할미꽃은 무덤의 텃줏대감, 그 앞으로 훌쩍 커버린 고사리가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갈림길에도 어김없이 높은 곳만을 향하는 화살표를 따라 갔습니다. 깊은 산골을 따라가며 이미 산을 따라 계곡을 만들어내는 동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깊은 산골을 따라 고개를 두어 개 넘으니 산 위에 제법 넓은 밭이 나타났습니다. 제법 내린 비 덕분인지 농부의 손이 밭이랑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한손 한손 움직일 때마다 농부의 꿈이 하나씩 심어지고 있었습니다. 산속의 포근한 자리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이 깊은 산중에 집들이 자연을 따라 흩어져 있었습니다.


등산로는 마을 앞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제법 큰 개울이 마을 옆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바위를 따라 작은 폭포도 만들고 자그마한 웅덩이도 만들어내는 개울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움푹 파인 물웅덩이에는 올챙이들이 새까맣게 점점이 박혀있었습니다. 돌을 하나 던져 던집니다. 올챙이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다 이내 다시 잠잠하게 그들의 생활만을 즐깁니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저려옵니다. 베시시 웃으며 다시 산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나무 계단이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쉼 호흡을 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땀이 무이도 많이 났습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길 가운데 있는 넓은 돌에 앉았습니다. 온 산에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물을 마십니다.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 줄을 모릅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사소한 거짓말부터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넙적 돌에 앉아 바짓단을 무릎까지 걷어올리니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춥기까지 합니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 아래로 동강의 물이 구비구비 흐르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듯 그렇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순간 자갈소리를 내면서 힘차게 흐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소리가 나지 않을 법도 한데, 마치 자기의 존재를 알리듯 했습니다. 능선이 끝나는 시점부터 급경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설마 설마 길이 없을 같았는데, 급경사가 끝나자 바로 곁에서 동강의 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색깔이 보석같이 고운데, 가까이서 보니 그리 깨끗하지는 않았습니다.
 
동강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개를 데리고 온 중년의 부부 한쌍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길동무를 했습니다. 동강가를 한참을 걸어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산길이 끝나니 제법 차가 다닐만한 큰 길이 나았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빗속에서 한 가족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딸 2명과 아들 한 명이 동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진지하게 낚시를 하고 딸들은 한 우산을 쓰고 번갈아 가면서 낚싯대를 던지고, 한 명은 휴대폰을 연신 만지고 있었습니다. 곁에 가서 잡은 물고기 있는지 구경을 했습니다. 사람들 살가는 모습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할미꽃을 품은 무덤을 다시 만났습니다. 정겨움이 더해가는  듯합니다.


어라연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맑은 공기와 동강의 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물속으로 한 사람을 떠나 보내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어라연 에피소드

어라연 가기 전날 학교에서 밤샘을 했습니다. 이것저것 별 소득 없는 일들을 하느라 시간을 소비하느라 한참을 학교에 있다 보니 새벽이 지났고, 집으로 내려가는 것이 귀찮아서 학교 숙직실에서 아침이 밝아 올 때 쯤에야 겨우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정리를 끝내고 어라연으로 등산을 갈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노무현 대통령 자살이 흘러나왔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죠. 그런데 사건의 전말은 갈수록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라연으로 떠났습니다. 나는 사실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이성적 측면보다는 심정적 측면에서 늘 그 사람을 지지했습니다. 힘내어지지 하지 못한 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더 많은 더 크고 독한 마음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부정했습니다. 대중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민주주의의 탈을 쓴 춤에 자기 스승이 죽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아테네와 라이벌이었던 스파르타의 민주주의 방식을 이상적 방식으로 여겼습니다.


우린 그동안 누려보지 못한 최고 권력자를  이리저리 갖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느 누가 감히 최고 권력자를 이토록 신나게 두들겨 보겠습니까?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우린 그 대가를 너무나도 많이 치러야 한 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합니다. 우린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진실 속에 한 사람을 가두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기의 진정성과 삶의 가치가  뿌리째 흔들린다면 우린 이미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그 흔들림이 시작된다면..               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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